# 직장인 A씨는 지난달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서 태블릿PC를 싸게 판다는 글을 봤다. 혹시 사기판매가 아닐까 싶어 사기피해 공유 사이트에서 판매자 연락처를 검색했지만 아무 사례도 나오지 않았다. 안심한 그는 ‘562’로 시작하는 판매자의 계좌로 81만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퇴근하고 물건을 보내주겠다던 판매자의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다음날 알아보니 ‘562 계좌’에 당한 피해자는 A씨뿐만이 아니었다.
중고거래 시장이 갈수록 커지면서 각종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타인 명의로 만든 연락처와 계좌를 이용한 사기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동일조직의 범행으로 추정되는 사기피해가 속출하자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피해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대화방을 통해 피해사례 수집과 사기수법 공유에 나섰다.
22일 현재 A씨가 개설한 중고거래 사기피해자들의 단체대화방에는 314명이 입장해 있다. A씨가 이 중 256명의 피해내용을 취합한 결과 지난 7월부터 이달 8일까지의 피해금액만 총 1억641만원에 달했다. 피해물품은 수십만원대 전자기기와 생활가전부터 수백만원대 명품 가방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피해자들은 일련의 중고거래 사기가 동일조직이 저지른 범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두 달간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 매일같이 판매글이 올라온데다 범행수법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사기범은 매일 다른 명의의 연락처와 계좌번호로 사기피해조회 검색을 피했다. 특히 대부분의 입금계좌는 ‘562’로 시작되는 신한은행의 가상계좌를 사용했다. 피해자들이 입금한 중고물품 대금은 가상계좌와 연결된 타인 명의의 대포통장 계좌로 송금됐다.
피해자들과의 연락 역시 타인 명의의 대포폰이 사용됐다. A씨는 “계좌 명의자와 연락해보니 사기범들에게 돈을 받는 대가로 선불폰 유심을 개통해주고 신분증 사진까지 보내줬다고 증언했다”고 설명했다. 사기범 일당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물건을 보냈다’며 가짜 택배 운송장 사진을 찍어 보내는 치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받은 사진의 운송장번호가 거의 똑같은 것으로 미뤄볼 때 동일조직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피해자들이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여러 중고거래 카페에 자신들이 당한 사기수법을 공유하자 사기범의 보복이 잇따랐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피해자의 연락처를 기재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연락이 가게 만들거나 피해자 주소로 배달음식을 보내는 방식이다. A씨는 “사기범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 공포에 떠는 피해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피해 신고가 잇따르자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진범이 따로 있는 경우 명의자를 달리하는 식으로 수사망을 피하기 때문에 수사에 시간이 걸린다”며 “사기에 가담하지 않고 명의만 빌려준 사람이라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인터넷상의 사기 건수는 2014년 5만6,667건에서 지난해 13만6,074건으로 5년 만에 2배 넘게 급증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