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동남아시아 등에 가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씹는 것을 자주 본다. 씹다가 침을 뱉기도 하는데 마치 각혈하는 것처럼 색깔이 붉어 보기가 좋지는 않다. 대만에서는 빈랑, 말레이시아에서는 피낭, 영어로는 비틀넛 등으로 불리는 빈랑이다. ‘동양의 진주’로 불리는 말레이시아 페낭은 원래 이 섬에서 빈랑나무가 많이 자라 붙여진 이름이다. 빈랑나무의 열매를 잎사귀에 싼 다음 석회질 성분과 함께 씹으면 즙이 나온다. 각성효과가 있어 택시나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졸음 방지용으로도 많이 즐긴다.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어 한 번 씹으면 끊기가 쉽지 않다. 오래 씹으면 얼굴이 불그스레해지고 이가 변색한다. 대만에서는 ‘대만의 껌’이라고 불릴 만큼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대만서시’라는 판매원까지 생겼다. 중국 4대 미인 중 하나인 서시(西施)를 딴 대만서시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호객 행위를 하는데 웬만한 대졸 신입사원보다 벌이가 더 좋다.
사람들이 빈랑을 즐긴 지는 2,000년이 넘었다. 중국 청나라 때 채육영이 쓴 ‘대만부지(台灣府志)’에는 ‘남녀가 모두 씹기를 즐기며 특히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과일’로 소개돼 있다. 빈랑을 약물로 사용한 기록은 중국 진나라로 올라갈 만큼 오래됐다. 한의학에서 빈랑은 위장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이며 기생충 약으로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인구의 10% 이상이 즐길 정도로 널리 퍼졌지만 따져보면 발암물질이 들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빈랑 열매에 들어 있는 아레콜린 성분을 구강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인도에서는 이 열매가 포함된 제품에 ‘건강에 해롭다’는 문구를 삽입하도록 했다.
빈랑이 코로나19 퇴치에 도움된다는 믿음이 중국에 퍼지면서 때아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올 들어 코로나 환자가 급증할 때 중국 국가보건위원회가 빈랑을 처방으로 꼽으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빈랑이 진짜로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더라도 약으로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고 코로나19가 제아무리 무섭다고 한들 암에 비할까.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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