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에는 6년 전인 2014년 10월 독감백신 주사를 맞고 다리·허리 힘이 빠지는 신경계 증상으로 길랭-바레 증후군 진단을 받은 환자 A(74)씨가 질병관리청을 상대로 한 피해보상신청 항소심에서 승소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팔다리 힘 빠지고 절반 이상 마비 증상…호흡·삼킴곤란도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행정3부)는 “예방접종과 길랭-바레 증후군 사이에 시간적인 밀접성이 있으며 예방접종으로부터 이 증후군이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의학 이론이나 경험칙상 불가능하지 않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예방접종 11일 뒤 길랭-바레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발병률이 낮은 편인 이 증후군은 운동·감각신경을 마비시키는 말초성 신경병증. 발병 원인이 확실하지 않지만 신체의 면역체계가 신경을 공격하는 세포 매개 면역반응 또는 바이러스 감염 때문으로 추정된다. 덜 익힌 닭고기 등 가금류에서 흔히 발견되는 박테리아(캄필로박터), 독감·코로나19·에이즈·지카 바이러스, A·B·C·E형 간염 바이러스, 폐렴균 등이 감염원으로 꼽힌다.
말초신경 중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운동신경에 염증을 유발해 양쪽 발·다리(약 10%는 팔·얼굴)에서 시작해 몸통·팔로 퍼지는 저림과 사지쇠약(근육 약화)을 겪는다. 절반 이상이 증상 시작 2주 안에 불안정한 보행, 걷거나 계단을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쇠약·마비를 경험한다. 3분의1은 바늘로 찌르는듯한 심한 신경통을 겪으며 피부 밑으로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이상감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뒤 며칠~몇주 뒤부터 증상이 점차 회복되지만 15%가량은 보행기·휠체어 사용이 필요한 장애가 남는다. 마비 증상이 6개월 이상 진행되면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있다.
여러 장기·조직의 기능을 조절하는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는 기관들이 영향을 받아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는 내장 근육이 약해지면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지고 심장이 빠르게 또는 느리게 뛰는 등 생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말하거나, 씹거나, 눈꺼풀 등을 움직이기 어려울 수 있고 환자의 40% 이상은 호흡근이 매우 약해져 산소·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아야 할 수 있다. 침대·의자에서 일어날 때 혈압이 낮아지고 어지럽고 실신까지 하는 기립성 저혈압도 나타날 수 있다. 호흡곤란,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보이는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혈압·맥박·호흡·체온 등 활력징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아시아인은 눈 마비→보행 불안정 이어지는 경우 많아
매년 380명 이상의 길랭-바레 증후군 환자를 치료하는 미국의 유명 병원인 메이요클리닉에 따르면 환자의 3분의2는 증후군 증상 발생 전 6주 사이 호흡기계·위장관계 감염 또는 모기가 옮기는 지카바이러스 감염 등의 증상이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후에도 발생할 수 있다. 남성에서 더 흔하고 나이가 들면서 위험이 증가하며 사망률은 4~7% 수준이다.
발병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북미·유럽에선 말초신경의 보호 덮개(수초)를 손상시켜 뇌로의 신호 전달을 막아 근육 약화·무감각·마비를 유발하는 급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신경병증(AIDP)이, 중국·일본 등 아시아에선 눈에서 마비가 시작돼 불안정 보행으로 이어지는 밀러피셔증후군(MFS)이나 급성 운동감각축삭신경병증(AMSAN) 등이 더 일반적이다. 축삭(axon)은 신경세포의 세포체에서 길게 뻗어나온 가지(돌기)로 신경계의 가장 중요한 신경전달 통로다.
환자가 스스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하면 신경세포 파괴를 줄이기 위해 건강한 성인에게서 추출한 면역 글로불린(감마 글로불린)을 정맥으로 주입하거나, 신경세포를 공격하는 항체를 제거해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과 심각성을 줄일 수 있다. 항체제거 방법은 환자의 혈액을 밖으로 빼내 혈구·면역세포를 혈장과 분리한 뒤 혈장 대신 수액제와 섞어 다시 주입하는 혈장분리반출술(혈장교환술). 인공호흡기 사용기간을 단축하고 독립적으로 걸을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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