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이야말로 천기(天氣)가 모이는 곳입니다.” 1392년 조선 건국 후 새 수도를 물색하던 이성계에게 풍수에 능했던 고승 무학대사는 한양을 적극 추천했다. 전국을 누비며 지세를 살핀 무학에게 지금의 경복궁 터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한강을 끼고 있는 풍수지리상의 명당임이 틀림없었다. 새 나라의 기틀을 잡고 기존 수도인 개경을 중심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고려 권문세족의 힘을 꺾어야 했던 이성계는 1394년, 신하들의 반대에도 한양 천도를 강행한다. 그렇게 한양 시대가 시작됐고, (왕자의 난에 따른 개경 환도도 있었지만) 이후 국호가 바뀌는 와중에도 600년 넘게 수도로서의 자리를 이어 온 것이 한양, 바로 지금의 서울이다.
민족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600년 수도 서울. 신간 ‘서울 해법’은 역사 깊은 이 도시의 땅과 건축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 세월 ‘수도’로서의 지리적·상징적 위상을 지켜 온 서울의 성장통을 들여다보며 ‘옳은 도시, 좋은 건축’이라는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도시로의 변모를 모색한다.
‘여러 겹의 천 조각을 기운 누더기 같은 조직(組織).’ 건축학 교수이자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용적률 게임’의 예술감독을 맡았던 저자는 서울을 이렇게 표현한다. 수도로서 6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 안에 들어선 건축물들의 나이는 환갑이 채 되지 않았다. 최근 60년 녹지를 제외한 시가지화 면적의 70%를 갈아엎은 탓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군사정권의 밀어붙이기식 개발 속에 빠른 속도로 녹지가 사라지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특색도, 원칙도 없이 제각각의 입맛 따라 건물이 들어서고, 다시 무너지면서 서울은 ‘굵고 거친 천, 가늘고 부드러운 천, 색상과 무늬가 다른 천 조각을 이리저리 덧대고 붙여 만든 헌 옷 같은 새 옷’이 되어버렸다.
그뿐이던가. 사람도, 자원도, 돈도 모두 이 작은 땅에 집중되면서 서울은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렸다. 더 넓고 더 높은 공간 욕망을 품은 개인과 단체, 기업, 관료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뒤엉킨 치열한 게임의 장인 것이다.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4부에 달하는 본문을 지나 서울이 당면한 과제와 건축의 방향성을 제시한 에필로그 ‘서울 재(再)프로그래밍’에 담겨있다. 여기서 저자는 생산의 3요소(토지, 노동, 자본) 중 토지 가격이 노동 가치를 압도하고, 강남·강북의 격차 속에 집단주의가 팽배한 서울의 현실을 지적한 뒤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 대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밀도의 질 향상’이다. 주거 비율은 높이되(좋은 밀도), 근린 생활시설과 상업공간 등 넘쳐나는 비주거 비율(나쁜 밀도)은 낮추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청계천 이북(문화유산)은 보존 재생하고 청계천 이남(현실공간)은 청년과 신혼부부가 살 수 있는 공공주택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줄어든 비주거 비율만큼 소형 임대주택을 공공 기여로 받아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운영하는 방식이다. 과잉 상태인 상업공간과 근린생활시설의 임대료 및 공실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맞게 용도를 유연하게 조절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특히 코로나 19 이후 상업 활동의 무게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만큼 과잉 공급된 근린 생활시설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1~4부는 도시 계획과 건축 유형, 법·제도, 비용 등을 중심으로 서울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서양 건축은 방과 방이 불규칙하게 만나는 지점에 ‘완충벽’ 역할을 하는 ‘포셰’를 세워 연속된 도시 건축을 만들어 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건축은 포셰의 역할이 없이 인접한 집들의 담장이 경계를 짓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개발 과정에서 궁궐이나 저택이 도심부와 만나면서 일부 궁궐이 주변부와의 충돌·절충·변형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2만 5,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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