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국산 게임이 화제입니다. 지난 1일 스팀에 출시된 겜브릿지의 ‘웬즈데이’가 그것인데요. 위안부를 소재로 한 게임이라니. 듣자마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반면 대만의 백색테러를 소재로 한 ‘반교’ 같은 게임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이 게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웬즈데이는 누구나 해봤을 법한, ‘아픈 역사를 바꿀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게임으로 구현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일본제국 인도네시아 위안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순이’로 분하게 됩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 전쟁범죄의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죠. 일본군의 전쟁 범죄와 관련된 단서들을 수집해 옛 동료들을 구출해내는 것이 게임의 목표로 제시됩니다. 위안부를 주제로 한 액션 어드벤쳐 장르 게임입니다.
일각에서는 위안부를 소재로 사용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게임은 역사적 사실을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알린다는 차원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에 가깝습니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기능성 게임 개발 지원 사업비 지원을 받아 시작됐고,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도 취지에 공감한 시민들에게 목표치의 3배인 9,500만원을 펀딩받았습니다.
개발사 측은 “할머님들의 오랜 외침이 지워지지 않도록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님을 되새긴다” “전 세계 플레이어들에게 일본의 전쟁범죄의 피해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리고자 한다”고 기획 취지를 밝혔습니다. 게임 제작비를 회수한 이후 수익금의 50%는 전시 성폭력 예방방지사업을 위해 기부됩니다.
역사적 사실을 게임 내에 담아낸 것은 웬즈데이가 처음이 아닙니다. 국내 인디게임 개발팀 ‘자라나는 씨앗’은 ‘MazM(맺음): 페치카’라는 게임을 통해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과 당대 한인들의 아픈 역사를 녹여냈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의병활동을 지원한 독립운동사 핵심 인물 중 하나이지만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동포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최 선생에게 붙은 별명인 ‘페치카(러시아어로 난로)’를 이름으로 따온 이 게임은 올해 ‘지스타(G-star)’에서 굿 게임상을, 문화체육관광부로 이달의 게임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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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임은 사회적 의미를 가졌다고 해서 ‘소셜 임팩트 게임’이라고도 하는데요. 게임성까지 놓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장르게임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1960~1970년대 대만 백색테러를 다룬 공포게임 ‘반교(2017)’가 있습니다. 계엄치하 당시 학생, 민간인 처형이 이뤄지던 대만의 이야기를 공포 게임이라는 장르 안에 녹여내 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게임이죠.
이외에도 인도 서벵골 지역의 소녀 인신매매·성착취 문제를 제기한 게임 ‘미싱(2017)’, 나치 ‘순종 아리아인 양산 계획’의 비극을 다룬 육성게임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2018)’ 등이 게임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세계에 알린 대표 사례입니다. 미싱은 전 세계 5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잊혀져 가던 레벤스보른 차일드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게임은 말 그대로 게임인 한편 하나의 매체이기도 합니다. 영화, TV나 책과는 달리 쌍방향 매체이자 주인공 플레이어가 ‘체험적’으로 사안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몰입도와 성취감이 훨씬 크다는 특성을 가지죠.
일례로 FPS(1인칭 슈팅게임)인 ‘올펜슈타인 더 뉴 오더(2014)’에서는 나치가 승리한 대체역사적 세계관이 펼쳐집니다. 이 역시 나치 피해자들의 관점에서는 논란이 될 수 있을 법한 설정이죠. 하지만 게임 스토리와 세계관이 효과적으로 연결되면서 이 대체역사가 가져오는 효과는 달라집니다. 게임 내에서 나치 독일의 비도덕적인 행태와 더불어 그들이 일으킨 전쟁의 공포심이 플레이어들에게 전달되는 효과가 나타나는 거죠.
하나의 매체이자 미디어로서 게임업계에서는 이런 시도가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입니다. 게임을 통해 던질 수 있는 메시지,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는 겁니다.
단순히 ‘다루느냐 마느냐’를 넘어서 이제는 ‘어떻게’ 다루고 재현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역사적 폭력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자칫 당사자들의 고통이 가중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전시하는 ‘고통 포르노’로만 사용하는 식의 부적절한 접근법은 지양해야 합니다. 특히 다른 매체와 달리 게임 속에서는 플레이어가 폭력을 체험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게임도 다른 대중매체와 마찬가지로 ‘매체로서의’ 고민을 이어나가야 하겠습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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