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 농단을 방조하고 국가정보원을 통해 불법 사찰을 한 혐의로 기소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항소심에서 형량이 징역 4년에서 1년으로 대폭 줄었다. 1심은 우 전 수석의 혐의 7개를 유죄로 판단했으나 2심은 2개만 유죄로 봤기 때문이다.
특히 2심은 1심이 유죄로 판단했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와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미르·케이스포츠재단 관련 비위 등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방조 의혹에도 무죄를 주었다. 우 전 수석은 선고 뒤 기자들과 만나 “특검과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건 국정농단 방조 의혹이란 거였다”며 “오늘 판결에서 그게 전부 다 무죄가 났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함상훈·김민기·하태한 부장판사)는 4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우 전 수석의 항소심에서 총 징역 4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이 우 전 수석에 대해 구형한 징역 13년과는 차이가 크다.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을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우 전 수석이 이미 1년여 구금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혐의 18개 중 유죄, 1심 7개→2심 2개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 농단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지난 2017년 4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국정원을 통해 이 전 감찰관을 사찰한 혐의 등으로도 별도 기소됐다. 첫 번째 사건 재판부는 우 전 수석에게 2년 6개월을, 두 번째 사건 재판부는 우 전 수석에게 1년 6개월을 각각 선고했었다.
두 개의 1심은 총 18개 혐의 중 국정 농단 직무유기, 이 전 감찰관 업무 방해와 사찰,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CJ E&M 고발 요구, 정부 비판 교육감 사찰 등 총 7개를 유죄로 봤다. 하지만 2심 재판부가 우 전 수석에게 유죄를 준 혐의는 이 전 감찰관에 대한 사찰과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장에 대한 사찰 등 2개 혐의에 불과했다.
◇국정농단 방조 의혹 ‘무죄’ 왜?
이날 2심 판결에서 가장 주목받은 부분은 우 수석의 국정농단 방조 혐의가 유죄에서 무죄로 뒤집힌 것이었다. 앞서 1심은 우 전 수석이 직무상 의무를 포기한 채 오히려 국정 농단의 진상을 은폐하는 데 적극 가담함으로써 정당한 이유 없이 민정수석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했다며 유죄를 주었다. 이는 우 전 수석이 2016년7월26일 이후 연이은 언론보도를 통해 안 전 수석이 직권을 남용하여 미르 및 케이스포츠재단 모금에 관여하였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었으므로 그 진상을 파악하여 대통령에게 적정한 조치를 건의하거나 직무감찰 등 필요한 조치를 수행하여야 할 직무상 의무가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2심은 최씨와 안 수석에 대한 감찰이 우 전 수석의 직무에 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우 전 수석이 최씨와 안 수석에 대해 감찰을 수행할 의무가 발생했음을 인식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이 사건의 비위 행위의 존재나 그와 최씨, 안 수석과의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또 2016년10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안 수석이 비위 행위의 진상을 은폐하는 데에 우 전 수석이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같은 달 11일 안 수석 등과 한 회의 및 그 직후 박 전 대통령과의 면담도 안 수석 등과 공모해 사실을 은폐할 방안이나 계획을 마련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또 같은 달 18일 작성한 ‘법적 검토’ 문건도 비위행위 가담 사실을 은폐한 용도로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비록 안 수석의 보좌관이 이 문건을 각 재단 측 사람들에게 허위진술을 종용하는 데 사용하긴 했으나 그것만으로 우 수석이 비위 행위 은폐에 적극 가담한 것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 비위에 대한 감찰방해 혐의 ‘유죄’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이 전 감찰관에 대해 사찰을 지시한 것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이 추 전 국장에게 이 전 감찰관과 특별감찰 상황 사찰을 지시한 데 대해 유죄를 주었다. 이는 우 전 수석에 대한 특별감찰에 착수한 이 전 감찰관에 대해 특별감찰을 방해하고 무력화시킬 의도였다고 봤다. 당시 이 전 감찰관은 우 전 수석의 처가 부동산 관련 의혹, 의경으로 입대한 아들의 보직 특혜 관련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특별감찰에 착수했었다.
2심 재판부도 우 전 수석이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에게 이 전 감찰관과 특별감찰의 진행 상황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검사가 제출한 2016년2월1일~10월31일까지 우 전 수석이 추 전 국장 등과 주고받은 통화내역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자신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보도가 시작된 이후로 이전과 달리 추명호와 수시로 밀접하게 다수의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각종 의혹 보도에 대응하여 왔음이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이 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으로 인하여 의무 없는 일을 했다고 할 수 는 없다고 했다. 우 전 수석은 추 전 국장에게 비공식적으로 정보 수집과 보고 등을 지시하였고, 추 전 국장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자신의 지시가 민정수석의 직권 행사에 의한 것이란 점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 전 국장이 직권을 남용한 것은 인정되고, 우 전 수석은 추 전 국장과의 공범 관계로서 유죄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는 추 전 국장이 우 전 수석의 지시를 받고 국정원 직원들로 하여금 국내 보안정보 외의 국내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데 대한 것이다.
우 전 수석이 이번 2심에서 유죄를 받은 또 다른 혐의인 김 전 위원장에 대한 사찰도 마찬가지로 추 전 국장의 공범 관계임이 적용됐다. 이는 1심에서는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던 혐의다. 우 전 수석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태백-영월-평창-정선’ 선거구의 새누리당 후보자로 출마할 것을 선언한 김 전 위원장을 새누리당 공천심사 또는 고위공직자 후보군 등에서 배제되도록 하는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도 불법적인 방식으로 자료를 수집한 혐의를 받았다.
2심은 추 전 국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김 전 위원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도록 한 것은 처음부터 특정인의 약점을 중심으로 한 부정적인 내용만을 수집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서 직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해당 정보 수집이 고위공직자 또는 임명예정자에 대한 정상적인 인사검증이나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원활하게 보좌하기 위한 업무와는 관계가 없었다는 취지다.
◇재판부 “원칙·절차 무시해”…우병우 “무죄 끝까지 싸울 것”
재판부는 우 전 수석에 대한 징역 1년 선고 이유로 “피고인과 추명호의 지위, 피고인의 지시 내용, 추명호가 그 직권 남용에 이르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추명호의 직권 남용에 공모 가담한 피고인이 실질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주도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며 “피고인은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누구보다도 엄정하게 확인하고 감독하여 유지할 의무가 있는 민정수석의 지위에 있었으면서도 오히려 적법한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채 추명호의 직권남용에 공모·가담했다”고 밝혔다.
이날 우 전 수석은 “특검과 검찰은 제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2년 4개월 동안 성심껏 대통령을 보좌한 내용 전부를 범죄로 만들어 기소했는데,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했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두 건이 마지막에 유죄로 선고된 것에 대해선 사실관계 및 법리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할 생각”이라며 “대법원에 가서 끝까지 제 무죄를 위해서 싸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