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과 김순옥, 국내에서 이른바 ‘막장 드라마’ 작가의 계보를 꼽으면 절대 빠지지 않을 이름이다. 임성한은 1990년 데뷔해 ‘하늘이시여(2005~2006)’ 등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작가이며, 2000년 데뷔한 김순옥은 ‘아내의 유혹(2008~2009)’로 막장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다. 공교롭게도 이 두 작가의 두 작품이 최근 주말 시간대에 맞붙었다. 지난달 임 작가가 “피비’(Phoebe)라는 필명으로 절필 선언 6년 만에 TV조선 주말극 ‘결혼작사 이혼작곡’를 통해 컴백한 데 이어 김 작가의 ‘펜트하우스’ 시즌2가 금토드라마로 편성되면서 자연스레 경쟁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막장 드라마의 ‘신·구 경쟁’에서 마지막으로 웃는 이는 누구일까.
최근 시작된 ‘펜트하우스2’는 첫 회부터 복수극을 향해 내달린다. 지난 시즌 마지막회에서 악역이 승리하는 충격적 마무리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세세한 전개 과정 없이 시즌2 첫 회에서 모두 정리되었다. 자극적 장면도 여전하다. 전 시즌이 옥상에서 추락하는 여학생의 모습으로 시작됐다면, 시즌2는 드레스를 입은 여학생이 피 흘리며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모습으로 막을 열었다. 등장인물의 갑작스러운 음독자살과 학생들끼리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식고문’ 등이 1, 2회에 차례로 등장한다. 성대가 결절된 소프라노 천서진(김소연 분)의 대역이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 등 개연성 떨어지는 연출도 여전했다는 평가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전 시즌에서 갈등 구조를 다 쌓아 놓았기 때문에 굳이 새롭게 갈등구조나 서사를 만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센 사건을 더 세게 보이도록 하는 연출이 이전보다도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극 중반을 지난 임 작가의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30·40·50대 부부 세 쌍의 불륜과 이혼 과정을 그린다. 세 부부의 남편들이 각각의 이유로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을 요구하는데, 그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잔잔하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지는 효과를 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 가지 소재를 갖고 전통적 드라마 문법에 따라 움직이는 임 작가 드라마의 특징이 유지되고 있다”며 “요즘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기에 더 눈길을 끈다”이라고 평가했다. 임 작가는 불륜이라는 사건을 먼저 던져 놓아 갈등을 드러낸 후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남자들이 불륜에 빠진 과정을 따라가며 인물 캐릭터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그 과정을 설득력과 개연성 있게 전달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남편이 죽은 후 의붓아들에게 눈독을 들이는 새엄마의 설정 등 자극적 요소도 여전하다.
복수극의 카타르시스에 기대 자극적으로 앞만 보고 내달리는 김 작가와 전형적인 불륜 드라마의 문법을 따라가는 임 작가. 일단 시청률 경쟁에서는 김 작가가 앞서고 있다. 지난 20일 방영된 2회의 전국 시청률이 20.4%까지 치솟았다.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지난 14일 9.56%로 TV조선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을 올렸지만, ‘펜트하우스2’의 방영 이후 7~8%대로 다소 낮아졌다.
하지만 두 드라마 모두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은 채 불륜이나 살인, 폭력 등 자극적 사건들을 보여주기만 한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임 작가가 과거 드라마 후반부에서 휘몰아치는 전개를 보여준 바 있고, 김 작가도 후반부에 수습하며 권선징악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지켜볼 여지는 있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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