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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산업기반 무너뜨리는데 쓰는 전력기금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

에너지산업 기반 강화에 쓸 돈을

탈원전 손실 메꾸기용 악용 안돼

송배전 설비 확충 등에 활용해야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지난 2001년 한국전력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기존 한전이 담당했던 공적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마련한 공적 기금이다. 우리가 매달 내는 전기 요금의 3.7%를 적립해 만드는 기금으로 징수는 한전이 하고 사용처를 계획하고 운영하는 것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맡고 있다. 최근에는 매년 약 2조 원가량이 걷히고 있고 약 4조 원 정도가 적립돼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6월 1일 ‘전기사업법시행령’ 일부를 개정해 원전 발전 감축을 위해 발전 사업 또는 전원 개발 사업을 중단한 사업자의 비용을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보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삼척의 대진 1·2호기 및 영덕의 천지 1·2호기 사업을 중단한 한국수력원자력은 비용 보전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한수원은 일단 오는 2023년 12월까지 공사 계획 인가 기간이 연장된 신한울 3·4호기를 제외한 5기의 원전에 대한 손실 보전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비용은 월성 1호기 5,652억 원과 신한울 3·4호기 7,790억 원 등 1조 4,445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사실 신한울 3·4호기가 건설돼 1차 운영 허가 기간인 60년만 운영이 되더라도 한전에 가져다 줄 흑자 규모가 60조 원에 이르는 것이므로 현재 투입된 건설비의 일부인 7,790억 원은 60조 원에 비해 지극히 미미한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말 그대로 전력 산업의 민영화 이후 취약해질 수 있는 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써야 할 돈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써야 할 돈이다. 기반이 될 송배전 설비 확충 관련 문제를 풀거나 송배전 설비로 인한 산불 등을 예방하는 데 쓰여야 한다. 이 돈이 산업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린 결과로 발생한 손해를 보전해주는 데 사용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공적인 기금을 정책의 실패로 인한 비용 보전 수단으로 악용하는 나쁜 선례가 남게 된 것이다. 결국 탈원전으로 발생할 비용을 국민에게 떠넘긴 것이다.



월성1호기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와 한수원이 조기 폐쇄한 원전이다. 이에 대한 손실 보전이라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경제성이 없어 닫아야 한다는 정부와 한수원의 억지 주장이 사실이라면 손실 보전이라는 것은 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손해볼 원전을 닫아서 손해를 줄였는데 손실을 봤으니 비용을 보전해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현재 전력산업기반기금의 대부분은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관련 연구에 사용되고 있으며 신재생에 투입되는 총 보조금의 규모는 이미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연간 적립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 신재생보조금이 2024년에는 5조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금으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결국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마당에 한전의 주요한 흑자 원인 원전을 조기 폐쇄하고 진행 중인 건설 사업을 백지화하는 것은 전기 요금 인상 압박을 한층 가속화하는 것이다. 2030년까지 신재생 설비와 송배전망 확충에 35조 원을 투자해야 한다. 신한울 3·4호기의 건설만 재개해도 최소 60조 원의 이익을 볼 수 있으니 35조 원 공사는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탄소 중립을 추진할 때는 전기차, 전기 냉난방, 공장 전기화 등으로 전력 수요가 현재 대비 2~3배 늘어나야 하므로 같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비율이라도 부담할 비용은 2~3배 늘어나는 것이다. 원전의 뒷받침 없이는 대규모 전기 요금 인상과 전력 공급 불안정은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실패한 정책으로 인한 비용을 기금으로 충당해보고자 탈원전 청구서를 국민에게 날릴 것이 아니라 탈원전을 날려야한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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