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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건희 소장품 기증의 의미 살리려면…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인왕제색도' 등 국보급 대거 포함

예술품에도 '초일류 집념' 드러나

민관이 힘합쳐 가치 널리 알리고

이건희 정신 깃든 '리움' 건재해야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서울경제DB




내 귀를 의심했다. 국가에 헌정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애장품 2만 3,000점 가운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까지 들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이 그림은 삼성 리움미술관의 아이콘이며 소장자가 특히 애지중지하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기증작 중에는 국보급 문화재와 국내외 근현대 거장들의 대표작들도 대거 포함됐다. 유족의 결단에 고개 숙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기증을 계기로 이건희라는 인물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봤다. 그는 지난 1987년 회장 취임식에서 다짐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는 약속을 지켰다. 세계 초일류를 향한 이 회장의 집념은 예술품 수집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사람이나 작품에서 최고를 알아보는 조용하고 깊은 ‘심안’과 평생 갈고 닦은 ‘감식안’의 소유자였다. 재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리고 20여 년의 준비 끝에 기념비적인 리움미술관을 세상에 내놓았다. 리움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특별한 미술관으로 소장품이나 전시·건축 등 모든 면에서 아시아 초일류이다. “기업 활동이 세계화할수록 오히려 문화적 차이와 색깔은 점점 더욱 중요한 차별화 요소가 된다”는 그의 말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사회에서 기업가의 문화예술적 소양과 감성이 기업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는 그 말을 스스로 입증하고 떠났다.

이 회장 부부는 한국 문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일에도 조용히, 주저 없이 나섰다. 세계의 수많은 박물관·미술관들이 삼성의 후원을 받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파리 국립기메미술관 등의 ‘한국실’ 설립에 앞장섰다. 역사를 품은 옛집 보존의 효시가 된 성북동 ‘최순우 옛집’의 매입 후원과 서울대미술관 건립 등 국내 후원 사례도 들 수 있다.



정부는 박물관·미술관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 발전은 공공과 민간 부문이 효과적으로 함께 작동해야 성공한다. 봉준호 감독이나 배우 윤여정 등 대중문화 예술인과 훌륭한 국제적 명성의 작가들은 민간 섹터의 자양분을 받고 탄생했다. 사립미술관들은 사유재산이 아니다. 리움·간송·호림 등도 재단화된 이상 다 공공의 자산이며 우리 국민들의 것이다. 설립자나 그 자손들은 임시 관리자일 뿐이다. 이번 기증의 수혜 기관인 박물관·미술관들에 당부하고 싶다. 민관이 상생하고 사립 문화기관의 선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공동 전시와 소장품 상호 대여 등 국공·사립 박물관·미술관들의 상호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이건희 기증품 유치를 위해 열띤 경쟁을 벌였던 지자체들의 실망은 매우 크다. 그만큼 이들이 수도권의 문화 혜택을 부러워해왔다는 의미이자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미술·역사유물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13개 지방 국립박물관들이 고루 분포돼 있으나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과 과천 외에 청주관만 두고 있다. 앞으로 국립미술관의 지역 분관이 곳곳에 설립돼 지역의 목마름이 해소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리움미술관에 바란다.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민간 섹터의 문화 주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또 치열하게 살다 떠난 이 회장을 기리기 위해서도 리움이 건재해야 한다. 앞으로 삼성의 사업이 더욱 번창하고 수집도 재개해 리움을 다시 반석 위에 올려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 이것이 나의 바람이자 우리 국민의 희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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