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용 지표가 ‘쇼크’ 수준을 기록하며 긴축 프로그램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3일 발표된 미국의 8월 비농업 고용자는 23만 5,000명으로 전달(105만 3,000명) 대비 4분의 1 토막 아래로 떨어졌다. 월가의 예상(72만 명)을 한참 밑도는 것으로 9월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은커녕 연내 테이퍼링도 힘들어 보인다.
시장에서는 이제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스태그플레이션을 강하게 경고한 데 이어 경제학자 니얼 퍼거슨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제력을 잃으면 1960년대 초인플레이션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끔찍한 전망을 내놓았다. 러시아중앙은행(CBR)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못 잡으면 전 세계가 1년 반 내 2008년 금융 위기 같은 국면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역시 심상치 않다. 금리 인상을 비웃듯 물가·집값 등 인플레이션 속도가 빠르다. 8월 소비자물가가 2.6%까지 올랐는데도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11조 원 규모의 국민지원금을 푼다. 물가는 더 뛸 것이다. 통화·금융 당국과 재정 당국, 정부와 여당의 정책들이 각각 따로 놀고 있다. 여권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표심을 얻으려 재정 팽창의 유혹을 느낄 것이고, 내년 초 또 한 번 재난지원금 지급 명분으로 추가경정예산 편성 카드를 꺼낼지 모른다.
정부는 올해 4% 성장을 말하지만 세계 경기가 가라앉으면 언제든 더블딥(일시 회복 후 재침체)에 빠질 수 있다. 구조 개혁 없이 재정으로 만든 성장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우리의 부채와 취약해지는 제조업 기반을 거론하며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상황을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와 여당은 역대 정권 말 경제 위기가 자주 발생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재정·통화 엇박자 정책을 멈추고 글로벌 경기 위축의 후폭풍을 막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선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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