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서해에서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지 1년이 지난 가운데 정부가 피해자의 실종 좌표 정보조차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군이 피해자를 어느 해역에서 발견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상황에서 ‘월북’ 논란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그 사이 피해자는 오는 22일 첫 기일을 앞두고 아직 실종자에서 사망자 신분으로도 전환하지 못했다. 정부는 북한군 감청 자료와 통신 자료 등도 법정이 아닌 군 시설 내에서만 정보공개청구 소송 비밀심리 절차(인카메라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단독] "北 공무원 피격 정보공개" 요구에 靑 "한반도 평화 침해"...20일 7개월만 첫 재판
18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소송 의견서에 따르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국방부 장관, 해양경찰청장 측은 지난 16일 공무원 피살 관련 정보공개청구 1심 재판부에 ‘비밀심리 절차 때도 제출하기 어려운 자료가 있다’고 주장했다. 비밀심리는 당사자를 참여시키지 않고 재판부만 비공개로 정보를 열람·심사하는 제도다.
정부는 특히 ‘2020년 9월22일 오후 3시30분경 북한군이 실종 공무원을 발견한 좌표’에 대해서는 아예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부 측은 “국방부 장관이 ‘재판부의 소송 지휘에 따라’ 소관부서에 정보 비공개 열람·심사를 위한 협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실종자 좌표) 정보를 별도로 보유하고 있지 않음이 확인됐다”며 “국방부 장관은 북한군이 실종 공무원을 발견한 개략적인 위치를 추정한 다음 유족에게 공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방부 장관 또한 ‘실종 공무원을 발견한 좌표’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수사당국이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도, 유족의 정보공개청구를 거절할 때도, 7개월 간이나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첫 재판이 열린 중에도 ‘좌표 정보 자체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해명하지 않다가 뒤늦게 이 사실을 밝힌 것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6일 유족이 서욱 국방부 장관과 면담할 때에도 “실종 공무원 발견 위치를 황해남도 강령군 금동리 연안 일대로 판단하고 있지만, 정확한 좌표는 군사기밀보호법에 따라 특정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애초에 구체적인 좌표가 존재하지도 않았음에도 마치 기밀이라서 비공개하는 것처럼 허황된 주장을 해 온 셈이다. 해양경찰청 등은 지난해 수사 결과 발표 당시 피해자가 조류의 흐름을 타고 구명조끼와 부력재를 이용해 북한 측 해역까지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 측은 아울러 ‘2020년 9월22일 오후 3시30분부터 오후 10시51분까지 북한군 대화를 감청한 녹음파일’ ‘2020년 9월21일 오후 12시51분부터 9월22일 오후 10시51분까지 북한 통신내용과 국방부 산하 통신내용’ 정보에 대해서도 “제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군 작전에 지대한 위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특수정보(‘군사기밀보호법’ 상 2급 기밀)’라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다만 이 정보들에 관해서는 합동참모본부 내 특수정보보호시설에서 비밀심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재판부에 제안했다.
정부가 비밀심리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자료는 ‘해경이 작성한 무궁화 10호 직원 9명의 진술조서’ ‘해경이 작성한 초동수사 자료’ ‘2020년 9월22일 오후 6시36분부터 오후 10시11분까지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국방부·해경·해수부에 받은 보고’ ‘같은 시간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국방부·해경·해수부에 내린 지시’ ‘2020년 9월22일부터 9월28일 수석·보좌관회의 때까지 청와대가 ‘남북간 통신망이 막혀 있다’고 보고 받은 사실이 있는지 여부’ 등이다. 정부는 이들 자료도 분실 우려, 전자문서화 등 때문에 사본 형식으로만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 자료를 비공개로 검토한 뒤 유족들에게도 공개할 수 있는 정보인지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유족 측은 재판부에 즉각 반박하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판례상 ‘군사기밀보호법’ 상 2급 기밀은 공개청구 요구자에게 곧바로 공개할 수 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었다.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는 서울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국가가 사건 당시 무슨 조치, 무슨 노력을 했는지를 알려 달라는 게 우리의 취지인데 정부는 기밀 타령 등 엉뚱한 답변만 하고 있다”며 “진실 규명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답답해 했다.
앞서 이씨는 지난해 10월 국방부에 북한군 대화 감청 녹음 파일 등을, 해경에 어업 지도선 동료 9명의 진술 조서 등을, 청와대에 사건 당일 주고받은 보고·지시 사항 등을 각각 밝혀달라며 정보 공개를 청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이에 이씨는 올 1월13일 서울행정법원에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첫 재판은 소송을 제기한 지 무려 7개월이 지난 지난달 20일에야 열렸다. 청와대와 정부 측은 첫 재판에 돌입하기 전부터 “한반도 평화 증진, 군 경계 태세 등 국익을 현저히 침해할 수 있다”며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두 번째 재판은 재판부가 비밀심리를 진행한 뒤인 다음달 15일 열릴 예정이다.
한편 김홍희 해경청장은 이와 별도로 이달 7일 유족들에게 “해경의 수사 발표는 그간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확인된 사실을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발표한 것”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7월7일 “해경이 해수부 공무원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고인의 사생활을 상세히 공개하고 ‘정신적 공황 상태’라고 표현한 행위는 피해자와 유족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인권위 판단에도 제대로 된 후속 조치의 의지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관련기사> ▶[단독] 해경청장 "北피살 공무원 사생활은 국민 알권리"...인권위 '패싱' 논란
인권위는 해경이 2차 중간수사 당시 피살 공무원의 도박·채무액을 2배 이상 부풀려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또 해경이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의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발표한 데 대해서도 일부 전문가의 의견일 뿐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인권위는 김 청장에게 당시 해경 수사정보국장과 형사과장을 경고 조치하고 직무교육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김 청장은 “유족께서 아픔을 느낀 부분이 있었다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서도 “(유족 측이) 해명을 요구한 부분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으로 구체적 사안에 대해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인권위 권고에도 아무 반응이 없는 김 청장에게 유족들이 내용증명을 먼저 보낸 뒤에야 나온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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