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구 받아온 지휘자 투간 소키예프(사진)가 자신이 몸담고 있던 러시아 볼쇼이 극장과 프랑스 툴루즈 카피톨 국립 오케스트라(ONCT)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기로 했다. 소키예프는 몇 차례 내한 공연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며 지난 2017년에는 ONCT와 한국을 찾아 무대에 오른 바 있다.
7일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소키예프는 최근 성명을 내고 “두 곳의 모든 직책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러시아와 프랑스 음악가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어려운 결정을 강요받아 그만두기로 했다”고 전했다. 세계 클래식계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對) 우크라이나 정책을 지지해 온 예술가들의 공연을 잇달아 취소하며 ‘예술 연대’에 나섰고,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 성악가 안나 네트렙코 등이 예정된 무대에서 교체되거나 공연 자체가 취소되는 상황에 처했다. 친(親) 푸틴 예술가를 배제하던 ‘러시아 보이콧’ 분위기는 그러나 최근 정책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러시아 아티스트에 ‘침공에 대한 공식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캐나다의 클래식 공연 기획사인 밴쿠버 리사이틀 소사이어티(VRS)가 “‘전쟁 반대’ 입장을 공개 표명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다면 어떤 러시아 아티스트의 콘서트도 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 이유로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말로페예프의 공연을 취소했다.
소키예프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러시아 예술가들이 위협을 받고 무례한 처우를 받으며 이른바 ‘캔슬 컬처(cancel culture·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것)’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더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조만간 차이콥스키,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베토벤, 브람스, 드뷔시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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