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통해 물가 등 경제 현안에 대한 설명을 듣는 등 한국은행을 통해 경제정책 밑그림을 그렸던 역대 정부와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한은의 업무 보고나 의견 청취를 진행하지 않기로 하면서 인플레이션 위기 상황에서 중앙은행 ‘패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인수위 관계자에 따르면 인수위에서 거시경제를 담당하는 경제1분과는 부처 업무 보고를 마친 후로도 한은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거나 의견 청취를 진행할 계획이 없다. 물가나 가계부채 등 각종 경제 현안이 시급한데도 한은에 거시경제 및 금융 안정 관련 분석 자료도 요청하지 않았다.
과거 사례를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한은으로부터 직접 업무 보고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감안해 정부 부처 업무 보고를 모두 마친 뒤 한은을 만나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은이 정부 부처는 아니지만 경제정책의 한 축인 통화정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당시 경제 상황과 주요 이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자리를 따로 마련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한은 업무 보고를 통해 거시경제 동향과 함께 가계부채 문제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인수위는 경제 관련 현안에서 김앤장 등 로펌을 선호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인수위는 26일 윤 당선인이 참석한 워크숍에서 김앤장 소속 김형태 수석이코노미스트의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윤 당선인은 김 이코노미스트의 강연을 끝까지 들었다고 한다. 당초 경제1분과 인수위원을 맡은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강의하기로 했으나 민간 목소리를 듣자는 의견에 김 이코노미스트로 강연자를 바꿨다. 2008~2014년 자본시장연구원장을 지낸 김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며 물가 관리를 강조했다. 경제1분과는 김앤장 소속 박익수 변호사도 합류해 공정거래위원회 관련 사안을 맡고 있다.
한은 안팎에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 측면에서 인수위와 거리를 두는 것이 맞지만 국정 운영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한은이 가진 전문성을 전혀 활용하지 않는 것은 아쉽다는 반응도 나온다. 오히려 차기 한은 총재 지명을 두고 정치적 공방이 발생하는 등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한은이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금융 안정, 기후변화 등 여러 현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데 의견을 나눌 기회조차 없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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