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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분리해 공사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공단에서 떼어내 공사화하고 자산 배분을 담당하는 기금운용위원회에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내용의 정부 개편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기금운용 조직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는 최근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복지부와 관할 기관인 국민연금공단 사이에서 인사 파동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효율성 강화'와 '안정성 유지'라는 10년 이상 된 논란에 불이 붙은 꼴이다. 기금운용본부 독립을 찬성하는 쪽은 기금 규모가 급속히 증가하는 만큼 민간 금융전문가 중심의 기금운용으로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하며 이를 통해 기금 고갈 시기도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은 기금운용본부가 공사화할 경우 수익률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지나치게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져 막대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으며 공사가 오히려 정부와 정치권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관치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찬성-이준행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전문성·시대에 뒤떨어진 운용은 배임
● 11개국 연기금 대비 수익률 2% 낮아
● 적립기 풍부한 유동성 활용 전략 필요
● 이대론 2060년 전에 기금 고갈 위험
국민연금기금의 적립금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운용 전문성에 대한 논란과 함께 기금운용본부 공사화가 쟁점이 되고 있다. 국민연금 수익률을 주요국 11개 연기금의 운용수익률과 비교하면 5년 장기평균수익률은 2% 이상 낮은 수준이며 거기에 더해 운용수익률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의 운용체계가 지속되면 수익률 하락 추세를 막기 어려워 오는 2060년으로 예상되는 기금 고갈 시기가 더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낮은 수익률이 지배구조 때문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금운용위원회, 국민연금공단에 한 부서로 있는 기금운용본부의 운용체계, 자금 운용에 걸맞지 않은 조직 문화가 낮은 수익률의 핵심 원인이기 때문이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 제고와 기금 공사화를 주장하면 금융의 논리로 국민의 노후재산을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고도 한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백번 양보해도 현재 국민연금이 처한 상황에서는 아니다. 기금 적립금이 급속히 늘어나는 시기에는 위험자산의 투자 비중을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안전자산 위주의 운용이 미래세대에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오히려 더 큰 위험이다. 그런데도 50%가 넘는 자산을 국내 채권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배임에 가깝다. 시대에 뒤떨어진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금운용체계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적립금을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만들어진 유년기의 헌 옷가지다. 특히 현재와 같이 기금이 여유 있을 때 적절한 위험을 취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운용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 기금도 20~30년밖에 시간이 없다. 이 기간 동안 기금을 잘 운용하는 것이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출 수 있고 다음 세대 연금가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나아가서는 국가 재정의 부담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다. 적립기의 풍부한 유동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산 배분이 중요하다. 이런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실행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지배구조 구축이 시급하다. 우선 기금운용 집행조직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 거대 기금을 위탁 관리하는 조직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아니면 내부역량 강화와 함께 외부 위탁사 활용을 동시에 추진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혹자는 국부 펀드가 아니므로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처럼 위탁운용기관 역할에 만족하는 운용체계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처한 위치는 사뭇 다르다. 연못 속 고래로 국내에서는 자본 시장에서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규모가 향후 30년 동안 급속히 증가하는 청년기의 기금이라는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미 장년기에 들어선 캘퍼스와는 운용 스타일이나 조직이 달라야 한다.
일부 학자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을 보강하는 지배구조 개편만으로도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니다. 운용집행조직이 공단에 있는 한 기금운용위원회의 지배구조를 개편한다 해도 임명권자와의 갈등 문제, 공단 이사장의 운용간섭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수익률 제고를 위해 해외투자 확대와 투자 다변화에 걸맞은 우수한 운용 인력 확보가 중요하지만 인사·예산이 공단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우수한 전문 인력 확보는 요원하다. 보수·의사결정·지원체계 모두가 걸림돌이다. 조직문화와 브랜드 가치도 중요하다. 공단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다.
연금재정 안정화를 위해 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기금 운용의 안정성과 공공성을 중시하면서도 운용조직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연금제도 개혁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금운용조직 문제를 그냥 넘기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특히 향후 20~30년 동안은 투자의 골든타임이다. 현재 구조로 가면 해외 연기금의 평균적인 장기적 수익률에도 2% 이상 하회한다. 산술적으로 연금 고갈 시기를 20년 이상 늦출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금액으로는 무려 수백조원에 육박한다. 언제까지 이 기회비용을 감수할 것인가. 기금운용공사로 독립하는 법안의 심의가 시급한 이유다. 정치권이 이해 당사자들의 기득권 수호에 매몰돼 국민 노후자금의 고갈 시기가 앞당겨지는 것을 방기한다면 이 또한 배임이다.
반대-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수익 제고는 환상… 정부 입김 세질수도
● 인력 추가 채용땐 고정성 높아져 비효율
● 정권 입맛 따라 철학 없는 인사 가능성
● 적립금=세금, 관리차원서 접근해야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말 그대로 공단(公團)이다. 공단은 국가행정기관(국가기관)이 하는 일 중에서 특수성을 가지고 있거나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를 모아 법인을 설립하고 그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공공기관이다. 공단의 목적은 기관 행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교통안전공단·산업인력공단·의료보험공단·시설관리공단이 예다. 이와 달리 공사(공기업)는 정부가 많은 지분을 소유한 법인이며 기업인데 공공성을 목적으로 한다. 기업이므로 매출과 수익이 매우 중요하다. 공기업의 목적은 공공성 그리고 이익 창출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는 지금까지 행정 효율을 목표로 하던 것을 이익 목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는 2060년쯤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를 막아보자고 조직 재편을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이익을 충분히 확보해 그것을 가입자인 국민에게 넉넉히 베풀겠다는 것이니 선의를 의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잘못된 개혁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기금운용본부가 공사가 되면 바라던 대로 독립성·전문성·개혁성이 강화되고 수익률이 올라갈 것인가.
공사화는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정부 산하 금융공기업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기금운용본부가 공사화된다고 해 전문성과 독립성이 확보되고 수익률이 제고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지금도 국민연금은 기금 일부를 스스로 운용하고 대부분은 민간 자산운용사에 위탁해 운용한다. 기금운용본부장은 외부 공모로 뽑고 본부장이 자산운용회사로 운용팀을 구성한다. 자산운용회사는 나름대로 그 회사 최고의 전문가에게 맡겨 운용하므로 현재 기금은 한국 최고의 전문가가 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이 자체 조직을 늘려 투자 전문가를 영입한다면 인력의 고정성으로 수익성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 금융업계는 다른 업종보다 인력 순환이 빠르다. 사기업이라면 성과급이 주어지고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겠지만 한 번 고용하면 해고하기도 어려운 준공무원 신분을 가지고 몇 년 후면 감각이 떨어져 투자업무를 할 수 없게 될 대규모 인력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반대로 한국 최고의 전문가가 공사에 남아 있으려 할 것인가. 고수익 추구는 결국 주식투자 비율을 높인다는 것인데 지나친 수익률 추구는 위험할 수 있다.
또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공사화할 경우 정부의 입김이 강해질 수도 있다. 인사가 문제다. 공사가 되면 사장 자리를 비롯해 국장 등 많은 자리가 새로 생긴다. 공기업 사장과 감사 등은 대통령 또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한다. 국회도 눈독을 들일 것이다. 정치 인사, 낙하산 인사가 되풀이될 것이다. 개혁성 있는 인사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만 공사의 모회사라고 할 수 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이사장과 공사 사장이 충돌할 여지도 있다. 정부 경제부처의 입김이 작용해 독립성 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운용 기준과 철학이 바뀔 수도 있다. 정부 시책에 부응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투자하거나 증시 부양 카드로 활용될 수도 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시장이 기능을 상실하고 붕괴된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 84조원을 투자했으며 대부분의 상장사의 1대 또는 2대 주주가 됐다. 2043년 즈음에는 2,561조원이 되는 금액으로 한국 대부분의 상장회사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최근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등 논의가 뜨겁다. 공사는 기관투자가의 일원으로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자의적으로 의결권 행사에 찬성 또는 반대할 가능성도 크다. 공사의 동의 없이 기업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기업은 공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감독기관이 된다. 공사가 한국 주요 상장기업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된다. 자유시장경제인 우리 경제에 큰 해악을 끼칠 우려가 크다.
국민연금공단이 국민에게 거둬들이는 것은 보험료지만 실상은 일종의 세금이다. 세금 운용은 수익 차원이 아니고 관리 차원이다. 그러므로 공사가 아닌 공단이 맞다. 공기업의 과잉 기능이 민간 시장을 침범해 경쟁을 약화시키고 민간의 활력을 저해한다. 정권은 국민에게 시혜자로 나서며 국민은 점차 시혜에 중독돼 의존적이 된다. 이는 곧 경제 주체인 국민의 경쟁 의지를 약화시킬뿐더러 창조경제에도 역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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