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기의 비극적인 죽음을 계기로 유럽 각국은 물론 미국·캐나다 등 세계 각국이 난민사태 해결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에서 외면당한 난민들에게 국경을 전면 개방했으며 난민수용에 인색했던 영국도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그동안 사태를 관망해온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지원 논의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다만 헝가리·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 강제할당을 거부하며 여전히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독일 경찰을 인용해 이날 저녁까지 헝가리에서 출발한 난민 가운데 약 6,000명이 독일로 넘어왔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부가 헝가리를 거쳐 오는 난민들을 무제한 수용하기로 하면서 이날 하루에만도 1만명을 넘는 난민들이 두 국가로 넘어올 것이라고 전했다.
양국은 앞서 헝가리에 억류돼 있던 난민들이 기차편 부족으로 도보와 버스로까지 서유럽행을 강행하자 국경 지역의 혼란을 줄이고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는 "이번 조치는 헝가리 국경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상상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로 시리아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은 그리스와 발칸 국가를 거쳐 헝가리에 들어온 후 기차를 타고 독일 등 서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독일은 올해 지난해보다 4배 많은 80만명의 난민이 자국으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며 난민지원 예산도 지난해의 4배인 100억유로(약 13조2,800억원)로 늘릴 계획으로 알려졌다.
최근 난민 수천명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이날 1만5,000명을 수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핀란드 총리는 자택을 난민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인 출신인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는 "내년 1월부터 핀란드 중부 킴페레에 있는 집을 난민들에게 개방할 것"이라며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각자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난민지원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는 유럽 난민사태 해결을 지원하기 위한 실무그룹을 구성하고 2,600만달러를 내놓기로 했다. 캐나다의 경우 스티븐 하퍼 총리가 난민수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야권과 지방정부 중심으로 난민수용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동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배타적인 입장이다.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폴란드·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4개국은 4일 공동성명에서 "의무적이고 영구적인 쿼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독일과 프랑스가 합의한 난민 강제 할당 원칙을 거부했다. 밀란 초바네크 체코 내무장관와 로베르트 칼리냐크 슬로바키아 내무장관은 수용 대신 난민의 이동만 돕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특히 헝가리는 철조망을 쌓는 등 차갑고 냉정한 태도로 일관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다른 유럽 지도자들과 달리 난민을 비하하는 발언을 잇따라 하면서 유럽의 '도널드 트럼프'가 됐다"고 보도했다.
한편 중동국가들이 부유한 산유국이면서도 이웃에서 발생한 난민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사는 가운데 이집트의 한 억만장자가 지중해 섬을 사들여 난민에게 제공하겠다고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이집트 통신사 오라스콤의 나기브 사위리스 최고경영자(CEO)는 4일 "비용이 얼마가 들든 이탈리아나 그리스로부터 섬을 사서 난민들에게 새로운 정착지로 제공하고 싶다"며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내게 섬을 팔아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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