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우리 사회 이야기가 팍팍하다.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추운 연말인데 철도노조 파업 등 '사회 온도'는 차갑기만 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자극적이 되고 자극에 대한 반응도 즉각성을 띠면서 감정적으로 건조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개인화·물질화 등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마음의 여유를 앗아간 탓인지 대화·소통·타협보다는 일방적 자기주장만 외치고 있는 듯하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고 그로 인한 대립과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타협이 필수적이고 그 타협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양보의 정신이 필요하다. 타협이 없다면 흑백논리만 존재하게 되고 그 사회는 전체주의가 돼버린다.
원내 수석부대표로 7개월을 보냈다. 국회선진화법 탓이기도 하지만 과반을 넘는 집권 여당으로서의 책임을 다소 보류하면서까지 타협을 위해 노력했다. 국가정보원 국정조사와 공공의료 국정조사를 모두 수용했다. 국정조사를 하면서는 청문회 증인 선정과 일정 연장에 대한 야당의 요구도 받아들였다. 국가기록원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있다며 이것을 열람하자는 요구도 수용했고 국정원 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요구도 받아들였다.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며 원만한 의회 공동체 운영을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의회를 버리고 장외로 가버렸었다. 양보가 패배는 아닌데 일부이기는 하지만 뭐든 양보를 하면 패배했다고 몰아붙이는 분위기가 야당 안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일부 세력에 휘둘리면서 야당의 시계는 2012년 12월19일에 맞춰져 있었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구현된다. 선거에는 승패가 있고 승패를 가른다는 것은 패했을 경우 승복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완전한 패자는 없기 때문에 승복은 양보의 정신없이는 불가능하다. 양보하는 마음이 없이는 승자를 승자로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 민족은 봉건제를 경험하지 못한 탓에 승패의 결과를 잘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수많은 외세와 싸워온 우리 민족의 민족사에서 기인한 것도 있고 이 불굴의 의지가 우리 민족을 지금까지 지켜온 힘이기도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승패 불인정, 승복 거부의 정서적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민주주의 제도를 이어 나가는 한 승복의 문화도 익혀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승패를 인정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타협과 승복은 민주주의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덕목이고 이를 위해서는 양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양보 없이는 협의도 없고 타협도 없으며 승복도 없다. 자기주장만 해서는 민주 질서를 만들 수 없고 과거에 잡혀 있으면 한 발자국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양보는 패배가 아니라 함께 이기는 길이다. 우리 정치권부터 그런 좀 더 넉넉한 길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