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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구려 성곽이 唐 長城이라고?


중국 국가문물국(國家文物局ㆍ우리나라의 문화재청과 유사)은 지난 5일 '장성(長城)자원' 조사 결과 춘추전국시대~명대(明代)까지 중국의 역대 왕조가 만든 장성의 총 길이가 2만2,196㎞라고 선포했다. 장성의 분포 지역은 서쪽으로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동쪽으로 헤이룽장성(黑龍江省)까지 중국 북방 지역을 망라한다. 여기에는 랴오닝성(遼寧省)ㆍ지린성(吉林省)ㆍ헤이룽장성(黑龍江省) 등 동북 3성도 들어 있다.

장성 조사, 역사 왜곡 의도 드러내

우리는 이번 조사결과에 고구려ㆍ발해의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려했고 어느 정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관련 자료에서 고구려ㆍ발해의 유적이 장성 유적에 포함됐음이 확인됐다. 장성 유적에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 라오벤캉 흙장성(老邊崗土長城)은 고구려가 당(唐)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16년에 걸쳐 축조한 천리장성(千里長城), 즉 고구려의 군사방어물인데도 중국은 이번에 당대(唐代)의 장성에 포함시켰다.

중국은 나름의 논리에 따라 고구려ㆍ발해의 성곽을 중국 역대 장성의 범주 안에 넣었으므로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할지 모른다. 중국의 독특한 역사이론인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따르면 중화민족(中華民族)은 한족(漢族)과 55개 소수민족이 융합 과정을 거쳐 형성됐으므로 각 민족이 이룬 역사, 즉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는 중국사이다. 장성은 이러한 이론 확립에 좋은 소재가 된다. 장성이라는 거대한 장벽은 중국사의 범주에 속한 이들을 바깥 세계와 자연스럽게 구분해주는 상징이다.

하지만 이들 역사유적은 중원(中原ㆍ한족의 본래 생활영역이자 중국의 중심부인 황허강 중하류 유역)을 차지한 왕조와의 대결이라는 역사적 사실관계와 짝해야만 고유한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중국의 장성자원 조사사업이 진정 유적 훼손 현황을 파악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천리장성은 고구려의 장성'이라고 적시했어야 옳다. 하지만 국가문물국은 이를 당대 장성의 범주에 넣음으로써 당의 역사유적으로 둔갑시켰다. 장성자원 조사사업의 진의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괜한 트집"이라고 말했던 중국 측 인사는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각 민족이 서로 다른 시대에 건립한 장성을 조사한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중국 언론도 '장성은 중화민족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장성 조사사업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고 고구려ㆍ발해의 성곽이 어떻게 중국 역대 장성의 범주 안에 들어가게 됐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북공정 같은 논리… 치밀한 대응을

이번 중국의 발표는 만리장성 자체의 길이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중국의 포털사이트 '바이두'에 게시된 장성의 내용에는 역대 장성과 만리장성의 구분이 모호하게 돼 있다. 만리장성의 이미지가 역대 장성에 그대로 투영돼 중화민족이 춘추전국시대부터 실재했음을 입증해주는 구체적인 구조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설령 고구려의 천리장성처럼 중원을 차지한 왕조를 상대로 주변 국가에서 쌓은 성일지라도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어지고 있다. 장성자원 조사사업이 동북공정(東北工程ㆍ고조선ㆍ고구려ㆍ발해 등 한반도 관련 역사를 고대 중국의 동북지방에 속한 지방정권, 즉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동북공정에서 보여준 인식이 그 저변에 굳건하게 흐르고 있다.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ㆍ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 연구과제)의 줄임말로 한반도 통일 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분쟁을 방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우호적 한중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면서도 쟁점이 되는 역사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그리고 치밀하고 다각적으로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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