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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역삼동 교보타워 인근의 A빌딩은 최근 약 200억원가량에 매각됐다. 연면적 1,447㎡의 5층짜리 건물인 이 빌딩은 지난 2006년부터 매물로 나왔지만 매각가격이 주변 빌딩의 평균 시세보다 다소 높은 탓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이 개통된데다 최근 이 부근의 상권도 발달하면서 8년 만에 매각에 성공하게 됐다.
서울 중소형 빌딩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개인과 기업의 여유자금이 최근 들어 중소형 빌딩시장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매매시장은 물론 경매시장에서도 중소형 빌딩을 매입하려는 개인과 법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
황종선 알코리아에셋 대표는 "연말까지 빌딩 거래를 완료하려는 개인과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빌딩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올 2ㆍ4분기 들어서 분위기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매각 진행상황과 문의현황을 고려하면 하반기 거래 건수가 상반기보다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매매·경매시장 빌딩 찾는 사람들로 북적=6일 알코리아에셋에 따르면 지난 2·4분기 서울에서 진행된 300억원 이하 중소형 빌딩의 거래 건수는 총 174건으로 전 분기(97건)보다 8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금액도 같은 기간 5,774억원에서 8,948억원으로 3,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매매시장에서 주 수요자는 역시 법인. 임대 및 사옥으로 사용하기 위해 중소형 빌딩을 매입하고 있다. 실례로 올 8월 배터리 제조업체인 세방전지는 신사동에 소재한 연면적 3,107㎡ '비앙카 빌딩'을 153억원에 매입했다. 세방전지는 이 건물을 임대용으로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는 성사되기 전이지만 시장에서는 중소형 빌딩 매매와 관련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웃도어 업체인 A사는 강남 지역에 500억원대의 빌딩 매입을 추진 중이며 인공피혁 제조 전문업체인 B사 역시 홍익대 인근에 400억원대 빌딩 매입을 진행 중이다. 이 밖에 언론사ㆍ사회복지법인ㆍ대학 등이 150억~200억원대 빌딩 매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매시장은 더욱 북적대고 있다. 기업들의 수요는 물론 임대수익을 노리는 개인들까지 중소형 빌딩 구매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경매 참여자가 몰리면서 경쟁률과 낙찰가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9월 ㈜바이런상사가 낙찰 받은 지상 10층, 연면적 2,647㎡ 규모 강남구 논현동 빌딩에는 무려 12명이 응찰했다. 경쟁이 셌던 탓에 낙찰가는 감정가보다도 12억원이나 많은 87억원이었다.
황 대표는 "빌딩은 거래금액이 높아 수요자가 한정돼 있다 보니 보통 응찰자가 2~5명에 불과하다"며 "중소형 빌딩에 투자자금이 몰리면서 과잉경쟁이 벌어진 사례"라고 설명했다.
◇가격 바닥론 고개…풍부한 유동성도 한몫=업계 전문가들은 중소형 빌딩에 대한 매수세가 확산되는 이유에 대해 중소형 빌딩 가격 바닥론이 힘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호진 빌딩경영플래너 대표는 "경기불황으로 빌딩 가격 조정이 가능한 매수자 우위 시장이 장기화되면서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모습"이라며 "이런 타이밍에 괜찮은 매물을 저렴한 가격에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업의 풍부한 유동성이 중소형 빌딩시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여유자금을 은행에 맡기기보다 빌딩을 매입해 임대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수익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얘기다.
개중에는 올해 말까지 부동산 자금을 지출해 법인세를 줄이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중소형 빌딩 거래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순이익의 일부를 사옥 매입 등 업무용 지출로 처리해 세금을 줄이려는 의도인 셈이다.
정 대표는 "바닥으로 떨어진 가격에 풍부한 유동성 및 절세 효과를 고려한 기업과 임대사업을 염두에 둔 개인들까지 중소형 빌딩 매입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며 "이 같은 분위기가 대형 빌딩 및 주택시장에도 확산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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