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끄는 데 왜 40년이나 걸렸을까요?" 얼마 전 지인이 우스갯소리로 던진 물음이다. 대답을 못하자 "모세가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자였다면 길을 묻고 또 물어 더 빨리 갈 수 있었을 겁니다. 원래 남자들은 길을 몰라도 잘 묻지를 않잖아요"라고 말했다. 한바탕 웃고 나서는 여운이 있었다. 오랜 기간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에 시달려온 한국 경제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의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진입한 후 세계 각국에서 정책 실패가 속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대규모 양적 완화와 과감한 재정확대, 강력한 엔저 드라이브를 앞세운 아베노믹스가 처참한 성적표를 남겼다. 일본 경제는 올해 2·4분기에 -7.3%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3·4분기에도 -1.9%로 성장률이 뒷걸음질쳤다. 제대로 된 경제구조 개혁 없이 돈을 푸는 것만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헛된 것이었음이 여실히 증명된 셈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일본을 답습하는 모양새다. 최경환 경제팀은 지난 7월 출범 후 41조원의 재정 조기지출과 두 차례의 금리인하 등 돈 풀기에 힘을 쏟았지만 3·4분기 성장률은 0.9%로 주저앉았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와 9·1대책으로 반짝 살아났던 부동산 시장마저 제자리로 돌아간 채 가계부채만 잔뜩 불려놓았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아베노믹스 실패의 전철까지 밟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정도다.
반면 중국은 '뉴노멀'을 중국식으로 '신창타이(新常態)'라고 명명하고 경제발전을 위한 새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9일부터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10%를 넘나드는 초고속성장 시대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신창타이'에 부합하는 중속성장 전략을 새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중국 경제의 성장목표는 7.0% 수준으로 낮춰지고 경제 정책 초점도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될 것이다. 물론 천문학적인 지방부채에 부동산 거품 붕괴 가능성과 경기 경착륙 위험까지 상존하는 중국 경제에서 '신창타이'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의 기업과 가계가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도 '뉴노멀' 시대 생존 전략을 새롭게 가다듬을 때다. 최 경제부총리도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는 말은 그만 거두고 구체적인 미래의 청사진을 기업과 가계에 제시해야 할 시점이 됐다. 국회와 청와대 등도 경제팀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공무원·연금·공공기관 등 공공부문 개혁 3법은 물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포함한 경제활성화 법안 20여건의 처리를 지연시키며 되레 훼방을 놓고 있다. 청와대 또한 금융권 등의 요직을 대선 전리품으로 나눠주기에 여념이 없다. 고려대 나온 대통령 때는 고려대 출신이, 서강대 나온 대통령 때는 서강대 출신이 판치는 세상에서 정부의 구조개혁 노력에 국민이 기꺼이 동참할 수 있겠는가.
1780년 중국에 다녀온 기록을 '열하일기'로 남긴 연암 박지원은 중국 곳곳에 잘 닦인 길과 그 위를 쾌속으로 달리며 물자를 실어 나르는 수레들의 모습을 보면서 경제가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개탄했다. 당시 조선은 무엇이 문제였나. 연암은 "모두가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죄"라고 일갈했다. 그러고 보면 평생토록 글을 읽어 입으로만 외우고 민생을 외면한 조선의 선비나 말로는 경제를 외치면서 제 잇속만 챙기는 요즘의 정치꾼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나라가 부강해지지 못하는 이유 또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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