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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에서 비롯된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퇴표명과 두 명의 총리후보자 낙마는 본인과 여당, 지명권자인 대통령은 물론 국민들도 기억하기조차 싫은 인사참사로 끝이 났다.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표명을 한 총리가 다시 총리업무로 복귀해 이를 수습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생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으로 국가개조를 표방하고 총리 후보를 두 차례에 걸쳐 지명했다. 그러나 총리후보자 두 명 모두 전관예우와 식민지 사관 문제 등으로 국회 인사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한 채 낙마했다. 국무총리 후보자에 이어 국무위원 후보자들에게도 국민들 눈에 납득하기 어려운 의혹이 제기되자 여당은 청문회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지금의 청문제도로는 유능한 분들을 국무위원으로 임명하기 어려우니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인사청문회제도가 여당이 야당일 당시 강력하게 도입을 주장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당의 의문 제기는 국민들 입장에서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제도는 2000년 6월 김대중 정부하에서 처음으로 도입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현 여당은 인사청문회법을 강하게 주장했고 그동안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후보자 여러 명을 낙마시켰다. 인사청문회는 임명권자의 임의적이고 독단적인 권한을 견제하고 후보자가 관련 공직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 등을 판단하기 위한 과정이다. 능력과 자질을 갖춘 분인지 국무위원으로서 업무를 수행함에 부족함이 없는지 등을 철저히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동의받는 절차다. 즉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던 짙은 화장으로 감춰 왔던 삶의 얼굴을 소위 '쌩얼'로 국민들에게 보여 주는 절차다. 국민들은 후보자들의 민낯을 볼 권리가 있다.
청문 절차가 사람을 개조하는 요술쟁이가 아닌 이상 그동안의 삶을 개인의 안일과 권력을 추구하는 데 무게추를 뒀던 후보자가 청문 절차를 거친 후 갑자기 절차 전의 사람과 다른 공익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더구나 수십년간 개인적인 이익과 권력에 민감하게 살아온 사람은 더더욱 변하지 않음을 역사가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임명권자의 입장에서는 청문 절차가 불편한 과정일지 몰라도 국민 입장에서 청문 절차는 여전히 필요하고 유의미하다.
인사청문회제도가 도입된 후 가장 논란이 많았던 쟁점들은 논문표절·세금탈루·부동산투기·위장전입·병역면제·전관예우 등이다. 팍팍한 삶을 사는 국민들은 주변에서 별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다. 그들은 소위 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태에 대해 놀랄 뿐이다. 국민들은 누구도 그들의 눈높이에서 벗어난 후보자들을 사회지도층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임명권자라면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제도에 의해, 또는 제도의 미명하에 정파적인 이유로 낙마하거나 방해받을 때 기꺼워할 사람은 없다. 매년 1,000명이 넘는 고위공직자가 상원 인사청문회를 받고 있는 미국에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대부분이 청문회의 어려움을 말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2년 전 고위공직자 임명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상원 휴회 중에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경우 청문 절차가 일정 기간 유예되는 규정을 남용하면서까지 임명을 단행했다. 그런데 며칠 전 미국대법원은 이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청문 절차의 어려움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이다.
인사청문회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임명권자 모두가 번거롭고 비효율적 절차라고 느낄 수 있으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람의 정서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은 임명권자가 부적격 공직자를 임명할 위험을 방지하는 장치로써 인사청문회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한다. 임명권자는 당장의 불편함을 장래의 편안함에 대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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