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은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대상이지 국가가 개입해 처벌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26일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에 내린 위헌 결정의 핵심이다. 사랑과 성관계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에 국가의 형벌권이 지나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헌법이 보장하는 성적자기결정권을 강화하고 사생활 보호를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헌법 제10조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성과 사랑을 포함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다.
이날 결정에서 재판관 9명 중 7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이중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 5명의 재판관은 "혼인한 남녀의 정조와 일부일처제 유지는 전통적으로 중요한 도덕 의무이기는 하나 이 못지않게 성적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것이 개인의 존엄과 행복추구 측면에서 한층 중요하게 고려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도덕적인 행위라도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크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게 현대 형법의 추세이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덴마크는 1930년, 스웨덴은 1937년, 일본은 1947년, 독일은 1969년, 프랑스는 1975년, 아르헨티나는 1995년, 오스트리아는 1996년 등 이미 오래전에 간통죄를 폐지했다. 간통죄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아 '유효 기간이 지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 소장 등은 형벌의 실효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간통을 저지른 배우자와 상대자를 고소하려면 혼인이 취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에야 가능하므로 간통죄 처벌이 가정 생활 유지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간통죄를 폐지한 나라에서 이전보다 이혼이 증가하고 성도덕이 문란하게 됐다는 통계가 나타나지 않는 점도 간통죄가 실효성을 잃었다는 점을 뒷받침해준다고 설명했다.
김이수 재판관과 강일원 재판관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간통죄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김이수 재판관은 별도 위헌 의견에서 "미혼의 상간자는 국가가 형벌로 규제할 대상이 아니다"라며 "모든 간통 행위자와 상간자를 처벌하도록 한 현행 간통죄는 위헌"이라고 밝혔다. 강일원 재판관도 별도 위헌 의견에서 "간통죄를 법적으로 규제할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죄질이 다른 수많은 간통 행위를 반드시 징역형으로만 응징하도록 한 것은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간통죄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다"며 "선량한 성도덕의 수호, 혼인과 가족제도 보장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간통죄 위헌 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결과였다. 실제로 그동안 4차례 합헌 결과가 나왔으나 시대에 흐름에 따라 점차 위헌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과 1993년에는 6대3의 의견으로 합헌 판결 나왔는데 당시 재판관들은 "선량한 성도덕,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 유지, 가족생활 보장, 부부 간 성적 성실의무 수호, 사회적 해악 사전예방 등을 위해 간통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01년에는 재판관 8대 1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으나 "앞으로 간통죄 폐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함께 제기됐다.
가장 최근 결정인 2008년 헌재에서는 4대 5로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보다 많았다. 당시 김종대·이동흡·목영준 전 재판관은 "오늘날 성에 대한 국민 일반의 법감정이 변하고 있고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만한 행위 모두를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날 헌재 위헌 결정과 거의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간통죄 위헌 판단 외에도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판결이 제시됐다. 헌재는 2009년에 결혼을 빙자해 성관계를 갖는 것을 처벌하는 '혼인빙자간음죄'가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법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제3자가 이미 혼인관계가 파탄 난 부부의 일방과 성행위를 한 경우 3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지난해 11월 대법원의 판결도 성적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차원으로 평가 받았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2008년 10월30일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한 합헌 결정문에서 "간통죄는 우리 민족 최초의 법인 고조선의 '8조법금(法禁)'에서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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