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남고속철도 서대전역 경유를 둘러싸고 호남과 대전에서 격한 대립을 보였지만 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갈등관리심의위원회는 해당 내용을 사전에 한 번도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사전 갈등 조정 역할이 중요하지만 국토부는 '사후약방문' 식 처방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9일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갈등관리심의위원회는 국토주택·교통물류·사회간접자본(SOC)건설 등 3개 부문으로 나뉘어 총 11차례 열린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호남고속철 경유역 관련 안건은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국토부가 사전에 갈등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두 지역민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셈이다.
국토부는 지난 2005년 사회적 갈등에 따른 충돌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갈등관리심의위원회를 설립했다. 위원회는 국토부 실·국장급 공무원 2인과 외부 전문위원 12인으로 구성됐다. 위원회의 역할은 갈등이 예상되는 사안을 미리 막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다. 국토부 갈등관리심의위원회는 2013년까지 연 2회를 개최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11회를 열었다. 회의 횟수는 늘었지만 제대로 된 갈등 예방 역할을 못 했다는 것이 주된 평가이다. 윤종설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원은 "갈등관리심의위원회가 실제적인 관리역량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기존 절차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제 역할을 못한 것"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국토부는 갈등이 예상되는 사안에 대해 사전 대응체계를 높이는 규정을 마련했지만 실제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해 갈등관리심의위원회에서 호남고속철 관련 논의가 없었던 것에 대해 "지난해에는 호남고속철의 노선이 어떻게 될지 확정되지 않았다"며 "노선 인가 신청서가 지난달 제출됐기 때문에 논의가 이뤄지지 못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토부 훈령 제14조를 살펴보면 '사전 갈등영향검토 결과, 갈등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되는 사업 또는 정책은 부서별로 갈등관리계획을 수립하여 갈등관리심의위원회에 상정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호남고속철의 경우 새 구간 이전에 따른 옛 구간 이용자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지만 이를 소홀히 한 것이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정부가 갈등관리심의위원회를 통해 갈등을 줄이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공무원들의 의지가 약해 유명무실해졌다"며 "호남고속철 경유역 사안은 한마디로 '골든타임'을 놓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현재 김포공항 국제선 확장, 동남권 신공항 건설 등 지역 간, 주민과 정부 간의 갈등이 예상되는 정책을 잇따라 진행하고 있어 사전 갈등 조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사후약방문' 식 처방을 넘어 '사전 갈등 완화'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소장은 "정책 관련 갈등 요인은 기나긴 협상이 필요하더라도 미리미리 논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현재처럼 정책을 결정한 뒤 주민반발을 뒤늦게 수습하는 방식은 격한 대립을 초래하고 사회적 비용만 늘린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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