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7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사실상 한미 FTA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가 FTA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처음으로 나머지 지자체장들은 동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장이 국가 업무에 관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돌출 행동에 우려를 나타냈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박 시장이 이런 내용을 담은 '한미 FTA 서울시 의견서'를 외교통상부와 행정안전부에 서면으로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박 시장은 "FTA는 1,000만 서울시민의 삶을 좌우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서울시장으로 엄중한 책임을 느낀다"며 "현재 시점이 매우 절박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취지에서 의견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ISD 조항의 경우 "FTA 발효 후에는 미국기업이 국내시장에 진출해 손해를 볼 경우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기구에 제소할 수 있어 서울시 및 시민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ISD 실무위원회에 배제돼 있는 지자체도 함께 참여해 중앙정부와 FTA에 따른 피해 현황 및 보호대책을 함께 협의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박 시장은 또 "FTA가 발효되면 자동차세 세율구간 축소와 세율인하로 한 해 약 260억원의 세수감소가 예상된다"며 "중앙정부의 세수보전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 상태에서 FTA 발효 후 세수마저 감소할 경우 서울시민에 대한 행정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FTA가 발효되면 미국계 SSM의 무차별 한국시장 진출이 가능하고 향후 분쟁 발생 시 서울시 SSM 조례 및 상생법ㆍ유통법 무효화 가능성도 있다"며 "소상공인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 정치권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마저 FTA 논란에 동참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자체장이 복잡한 FTA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의견을 밝히는 것인지 궁금하다"면서 "순수한 의도라기보다는 한미 FTA 비준을 지연시키려는 전략적 차원의 문제제기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지자체장으로서 중앙정부에 의견을 내는 것은 나쁘지 않다"며 "다만 ISD 해악만을 너무 부각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이날 중앙정부에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다른 지자체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성향의 지자체장은 11곳에 이른다. 경남도(김두관 지사)의 한 관계자는 "(지자체가) 거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특별한 계획도 없다"고 말했으며 충남도(안희정 지사)의 관계자는 "FTA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류경기 서울시 대변인은 "시도지사협의회라는 창구가 있지만 이번 결정은 서울시 단독으로 내린 것"이라며 "앞으로도 타 지자체와 FTA와 관련해 공동대응이나 의견을 조율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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