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스 교수는 대표적인 수정주의 계열 학자로 꼽힌다. 한국 전쟁의 발발 원인을 남침설, 북침설 및 남침유도설로 나눈다면 북한에 의한 남침설이 전통주의 사관이다. 반면에 커밍스 교수는 한국 전쟁의 기원이란 저서에서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남침유도설에 무게중심을 뒀다.
역사서술과 관련된 수정주의는 1960년대에 시작된 미국 사학계의 학문적 경향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미ㆍ소 냉전의 원인 대해 소련의 세계혁명전략 때문이라는 것이 당시 기존학설이었다. 반면에 일부 학자들이 냉전의 원인을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에서 찾으면서 수정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수정주의 사관은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과 결합하면서 대학가의 지지를 얻었다.
냉전에 관한 미국의 새로운 역사기술 조류는 냉전시대의 상징 같은 한국 전쟁에 대한 기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990년대에 한국 전쟁 발발 직전 북한군에게 남침명령을 하달한 소련의 공격명령서가 공개되면서 북침설이나 남침유도설은 역사학계에서 힘을 잃었다. 커밍스 교수가 이번 인터뷰에서 남침유도설을 부인한 것은 명백한 사료의 발굴 덕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인터뷰 기사 전문을 읽어보면 그가 종전 자신의 논지를 바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남침을 인정하면서도 일제강점기에 불거진 한반도 내부 모순이나 미국이 한반도 분단을 결정한 후 일어난 좌우 투쟁, 남북 간 군사 충돌의 연장 등 다각도로 전쟁원인을 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 전쟁의 성격을 여전히 내전과 베트남 전과 같은 반(反)식민지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커밍스는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식민지와 냉전, 계급 갈등이라는 전쟁의 구조적 기원을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한국 전쟁 연구에 큰 파장을 줬지만, 당대의 객관적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는 실증적 접근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전쟁 성격을 내전과 반(反)식민지 전쟁으로 보게 되면 압제와 폭정에 대한 저항이 되면서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느냐'는 전쟁책임은 없어진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정전 60년이 흐른 지금도 한국인들은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지에만 관심이 있다며 한국 전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비난 게임'을 멈추고 화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전쟁은 남북한 모두 150만명의 사망자와 360만명의 부상자를 냈고 10만명의 전쟁고아와 1,000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 정도로 우리 민족사에 가장 큰 피해를 불러온 비극적인 전쟁이다.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지를 역사적으로 명확히 하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또 다른 참화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이제 명백한 역사적 사실 앞에서도 북한의 전쟁도발과 책임을 호도하는 수정주의 사관은 우리에게 불편한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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