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손을 대지 마라. 지난 1년간 필자가 생활 속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 중 하나다. 필자가 근무하는 조폐공사는 화폐 외에도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총 품목 수가 무려 660개에 달한다. 골드바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됐다. 금 거래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확대해준다는 점을 고려해 시작한 일이다.
사실 공사는 몇 해 전부터 골드바의 브랜드명으로 '오롯(ORODT)'이라는 명칭을 준비했다. 이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해왔다. 오롯은 스페인어로 금을 뜻하는 '오로(Oro)'와 순우리말 '오롯이'의 합성어다. 일견 그럴듯해 보였으나 필자는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브랜드의 의미를 전달하려면 반드시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누가 우리의 설명을 찬찬히 들어 주겠는가. 영어도 아니고 온전한 스페인어도 아니어서 해외 판매시에도 뜻이 충분히 전달될 것 같지 않았다.
필자는 이 같은 의구심을 근거로 공사 내부 홈페이지를 통해 현상 공모에 착수했다. 골드바의 해외진출에 대비해 아무래도 새로운 브랜드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직원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10만원짜리 상품권까지 당첨금으로 걸었다. 직원들은 처음에는 웬 뜬금없는 발상이냐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를 받아보니 266명의 직원이 400개의 이름을 제안했다. 공사가 추진하는 미래의 전략상품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거북선·아리랑·무궁화·서울·독도·코리아 등 우리나라의 전통과 한국의 의미를 담아 추천하는 직원이 많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들 모두 국내용으로는 나름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지만 해외 판매용으로는 오롯처럼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고민 끝에 외부 전문가와도 상의해봤다. 오롯과 거의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브랜드네임 변경에 집착하기보다는 브랜드의 가치창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더 이상 진행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업무에 다소 혼선을 초래하기는 했지만 고칠 필요가 없는 것은 굳이 손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점은 값진 교훈이다. 최근 까다로운 통관 절차를 극복하고 인도네시아에 오롯 브랜드로 첫 해외 수출이 성사됐다. 비록 소규모이기는 하나 이를 계기로 미국과 캐나다에도 시험 판매가 추진되고 있다. 금의 수요가 가장 많은 중국·인도에 진출하는 것이 다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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