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실속 있는 수치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 행진이 수출호조에 힘입었다기보다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수입이 수출보다 더 큰 폭으로 감소한 데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경기불황으로 기업투자와 가계소비가 위축된 것도 수입둔화에 작용했다. 그 결과 지난달 502억달러의 실적을 올린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감소폭이 4.8%였고 수입은 400억4,000만달러로 무려 10.4%의 감소폭을 나타냈다. 수출과 수입이 동반 급락하는 불황형 흑자의 전형적인 양태다. 경기동행지수 등 지표들도 경상수지 흑자가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음을 방증한다.
불황형 흑자가 고착되기 전에 서둘러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도 불황형 흑자를 오랜 기간 방치했다가 자초한 것이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경제의 성장엔진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산업구조 개혁과 제도개선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정부나 기업이나 가계나 명심해야 할 것은 겉으로 드러난 숫자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는 물론 국민소득 3만달러에 근접했다는 통계 또한 금자탑이 아니라 환율변화로 인한 착시일 뿐이다. 그런 착시에 현혹된 채 나라 경제의 앞날을 위해 필수적인 구조개혁 앞에서 머뭇거리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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