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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민족반역자와 환향녀


한때 민족의 지성으로 꼽히다가 민족 반역자로 전락한 춘원 이광수는 1945년 8ㆍ15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론이 거세지자 '나의 고백'이라는 책에서 엉뚱한 '친일파 사면론'을 늘어놓았다. 그는 "엄격히 말하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도 협력"이라며 친일 공범론을 펴며 친일파 처단론의 차단에 적극 나섰다. 그러면서 인조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귀향한 환향녀(還鄕女)들을 살리기 위해 '홍제원 목욕 의식'을 치르라고 했던 것을 빗대 "민족 전체가 홍제원 목욕을 하고 다시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지 말자고 서약함이 옳다"고 궤변을 폈다.

실제 춘원의 주장대로 민족 반역자들은 단 한명도 사형에 처해지지 않았고 그나마 감옥에 간 일부도 곧 풀려나는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1949년에는 경찰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습격사건이 일어날 정도였으니 친일 청산이 이뤄질 리 만무했다.

새삼스레 춘원과 친일파 이야기를 꺼낸 것은 8ㆍ15 광복절이 가까워지면서 씁쓸하지만 우리 사회에 여전히 적지 않게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일그러진 역사 인식의 문제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일제 강점기 이후 타의에 의해 갈라져 사사건건 대립과 갈등관계인 남북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 갈수록 도를 더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강제 종군위안부 물타기 등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두 역사 인식과 관련이 깊다. 최근 정부가 일본의 군국주의화에도 불구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비밀리에 체결하려 했던 것이나, 정치권의 5ㆍ16 쿠데타 역사 인식 논란도 역사의식 부재와 맥을 같이한다.



다시 말해 역사는 흘러간 과거의 일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정치가인 E 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현재, 나아가 미래를 제대로 풀어갈 수 없다는 얘기다.

대나무는 마디마디 매듭을 지으면서 단단히 성장한다. 거센 태풍이 몰아쳐도 잠깐 휘어졌다가 다시 올바로 선다. 광복절을 앞두고 꼬일 대로 꼬인 남북 문제와 이념 갈등,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하겠다. 그 첫걸음은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는데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독립투사 후손들의 자조 섞인 한을 풀어주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여전히 독일이나 이스라엘에서는 홀로코스트(집단학살) 가해자를 지구 끝까지 찾아내 심판대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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