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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스털린의 역설


10년도 훨씬 전 미국 뉴욕타임스의 탐사 보도로 기억한다.

나이지리아에 한 의사가 있다. 그는 이웃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편인데도 7명의 아이들은 간혹 끼니를 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부족한 월급을 쪼개 기부도 하고 무료 진료도 다닌다. 그는 자신이 존경 받고 있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미국인 실업자 부부 얘기다. 그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지만 의식주 등 절대적인 생활 수준은 나이지리아 의사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불행하고 사회에서 버림 받았다고 울분을 토한다. 이 대목에서 뉴욕타임스는 행복은 물질적 풍요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다소 상투적인 교훈을 전한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은 1974년 '한 국가 안에서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개인의 행복도 커지지만 국가 사이에서는 관련이 없다'는 논문을 최초로 발표해 일약 스타가 됐다. 그의 주장은 '개인 소득도 한계효용감소 법칙을 따른다'는 이른바 '행복 경제학'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 행복 지수가 올라가긴 하지만 소득 증가분만큼 그대로 행복이 커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소득 증가분만큼 커지지 않는 행복

이 같은 소득의 한계효용감소 법칙은 경제학계에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 국가가 일정 성장단계, 특히 1인당 소득 1만5,000~2만달러에 이를 경우 국민 행복의 총량을 늘리려면 성장보다는 분배나 복지를 확충해야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털린 역시 반박 논문이 잇따르자 기존 논리를 옹호하는 주장을 재차 펼쳤는데 공교롭게도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나라였다. 실제 유엔ㆍ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물론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 연구에서도 우리나라는 국민 소득에 비해 국민 행복 지수는 턱없이 낮게 나오는 편이다.

얼마 전 전미경제조사국(NBER)은 세계 상위 25개국 국민의 소득별 행복도를 분석한 결과 "인간의 행복은 소득과 정비례한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하지만 국가끼리 비교할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고 우리나라의 국민 행복도는 같은 소득의 25개 국민 가운데 거의 꼴찌로 나왔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행복해지려면 돈 외에 무엇이 필요할까. 영국ㆍ프랑스 등 선진국이 국민행복지수를 측정하기 위한 세부 항목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바로 교육ㆍ주거ㆍ건강ㆍ자연환경ㆍ안전ㆍ법치주의 등 사회적 자본과 가족애ㆍ우정ㆍ자존감 등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도이다. 이 같은 사회적 부를 창출하지 않고서는 개인 소득이 늘어도 사회는 가난해지고 결과적으로 개인도 불행해지는 역설이 생겨난다.

우리나라 사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식의 미래를 위해 노후까지 희생하지만 행복해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결국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남의 자식도 함께 잘 교육시키고 관용과 타협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공동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물론 경제 성장이 반드시 동반돼야 이 같은 공공재를 확충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더 커진다.

국민 행복 높여야 창조경제도 성공

그런 의미에서 정체를 모르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국민 행복이나 사회적 자본의 확충 차원에서 접근해보는 건 어떨까. 창조경제가 정경유착으로 세계 최대의 부를 쌓아 올린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과 같은 기업인의 출현을 바라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혁신의 대명사인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같은 경영인이 탄생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적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에 걸맞은 기업의 탄생을 바란다면 실패 기업인에 대한 관용도 없고 학생들의 창의성도 말살된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공공재부터 바꿔야 한다. 물론 단기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을 게 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패러다임을 양적인 경제 성장에서 사회적인 성장으로 바꿔 국민 행복 지수를 높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과 창조경제의 씨앗을 뿌린 정권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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