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정치권에서 화두로 붙잡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급기야 금융시장의 근간을 흔들 조짐이다. 재벌개혁을 겨냥한 순환출자 금지나 금산분리 논의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비은행권 금산분리 등 구체적인 방안까지 나오다 보니 금융계는 물론 산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저축은행 사태 이후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조정하겠다던 국회의원들의 주장처럼 이번에도 제동이 걸릴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해 ‘보편적 복지’나 ‘생애주기별 복지’를 앞세워 열을 올렸던 정치권 논쟁의 중심에 언제부터인가 경제민주화가 떡하니 자리 잡았다.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를 온몸으로 느끼다 보니 복지 대신 경제민주화를 구호로 삼은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민주화가 시장자유주의를 침해하는 모순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법제화된 대형 유통업체 영업제한이나 재벌을 겨냥한 일감몰아주기 과세 등은 경제자유를 오히려 가로막는 조치로 지목 받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재벌해체론까지 들먹이던 정치권은 순환출자 금지를 넘어 비은행권 금산분리를 통해 대기업의 금융산업 참여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금융회사에 대한 대기업의 의결권을 박탈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금융전문가들은 경영권 공격을 막을 방도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보험ㆍ증권사들이 대기업 계열에서 분리된 뒤 이런저런 이유로 매물로 나오게 되면 이를 사들인 매수주체는 외국자본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은행뿐 아니라 제2금융권에서도 관치가 통하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을 때리기 위해 국내 유수의 금융회사들을 외국자본에 넘기겠다는 발상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럴싸한 미명 아래 누군가의 재산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는 약탈과 다를 게 있을까. 이런 식의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의 발전을 막고 저성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바깥에서는 ‘한국은 이제 금산분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전문가인 리쿠시 가와카미 SBJ은행 고문은 “일본의 경우처럼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위상이 높은 기업이 해외시장을 개척할 때 삼성은행과 함께 진출하면 한국 금융산업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도쿄 출장 길에 만난 그의 얘기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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