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가 이뤄 온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갖습니다. 특히 고위 경영자라면 더 하겠죠. 그가 만들어 온 커리어 자체가 하나의 신화입니다. 그래서 과거 현대건설 회장을 지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신화는 없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하루 4시간만 자고 열심히 일하는 열정, 안 될 일을 끝까지 밀어붙여 가능하게 만드는 의지 등이 성공한 자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문인지 이 대통령은 퇴임한 이후에도 항상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으로 공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5주기를 맞은 천안함 용사들에게 조의의 뜻을 표할 때에도 이 대통령의 여러 측근들이 동행해 그의 정신적, 정치적 영향력을 짐작하게 했죠. 마침 방위산업 비리나 공공 문화 사업과 관련해 친이계 세력의 관련성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른 시기입니다. 이 대통령의 행보는 탈도 많고 논란도 많지만 일국의 지도자로서 자신이 만들어 온 궤적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상징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의연함입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할 무렵 어느 신문사를 통해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이라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국정 최고 의사결정을 담당했던 아버지의 퍼스트 레이디로서 정계에 데뷔했던 박 대통령은 불과 몇 년 만에 10·26이라는 급난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의 와신상담 시대를 거쳐 97년 다시 정계에 입문한 그의 첫 일성이 ‘결국 한 줌’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수많은 영광과 보람의 시간을 아버지와 그 측근들과 함께 했지만, 인간의 장구한 역사적 흐름으로 보면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한 것이랄까요. 박 대통령이 숱하게 불통 논란에 휩싸이면서도 신중함을 기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이유 중 하나도 ‘결국 한 점’이라는 겸손한 자기 인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초연하고 마음을 맑게 가지려는 의사결정자가 항상 옳은 선택을 할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리더는 자신이 권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 자체를 소비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재량권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정도 이상으로 자신이 이루어 온 유산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이런 유산들은 또 다른 경험이자 자산으로 후배들에게 전수되지만, 조직의 입장에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조명할 수 있는 쓴소리 집단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객관화 능력은 리더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보필하는 주변인들에게 절실합니다. 왜냐 하면 자신이 모신 지도자의 성공에 의해 가치가 상승한 사람들이니까요. 역사 이래로 항상 공신(功臣)들은 부패와 ‘갑질’의 유혹에 굴복해 왔습니다. 초월적인 주군의 권위에 힘입어 자신 또한 그와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군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랄까요. 그러는 사이에 실수는 반복되고 정권 말기가 되면 얻었던 것보다 잃었던 게 더 많은 사람들이 되곤 합니다. 국민이 또 다른 권력자가 된 시대입니다. 자신이 대리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한 점’이 될 것이라는 자각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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