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가을 우리는 예기치 못한 단전 사태를 겪었다. 사실상 첫 '블랙아웃'이었다. 이후 우리나라에는 전기 가뭄이 들었다. 걸핏하면 절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여름에도 관공서에서는 아예 에어컨을 켜보지도 못했다. 서울 명동 같은 중심가에서는 실내온도를 단속하는 공무원들과 손님을 끌어 보려는 상인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여름은 길고도 무더울 것이라고 하는데 찜통 같은 한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올해는 조금 나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전력사정은 그때 가봐야 명확히 알 수 있다. 국민들도 짜증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력 수요변동에 적절히 대처 가능
아무리 전기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규제와 단속이 능사는 아니다. 국민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전력난을 해결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먹을거리와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어려운 문제 같지만 해답은 있다. 바로 에너지저장장치(ESS)다. ESS란 전력수급사정에 여유가 있을 때 전기를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도록 하는 전기에너지저장장치를 말한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실용화돼 있는 기술이다.
전기 사용량은 예고 없이 수시로 변한다. 이렇게 변동하는 전력수요에 맞춰 정전 없이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많은 발전기들이 최대로 낼 수 있는 출력보다 약 5% 정도 줄여서 발전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를 100까지 생산할 수 있더라도 95만 하는 것이다.
만약 적정 규모의 ESS가 보급된다면 이러한 출력변동에 대응하는 역할은 ESS에 맡기고 기존의 발전기들은 제 출력을 낼 수 있게 된다. 전기가 모자라면 ESS에 저장돼 있는 것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더 만들어낼 수 있는 전력은 100만킬로와트(㎾)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원자력발전기 한 대가 만들어내는 전력보다 더 많은 양이다. ESS를 적절하게 보급한다면 원자력발전기 한 대를 짓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비상용발전기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한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전국에 산재돼 있는 비상용발전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총발전량은 2,000만㎾가 넘는다. 이는 원자력발전기 20대가 낼 수 있는 전력과 맞먹는 엄청난 양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년 몇 백만㎾의 전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 그럴까. 다 이유가 있다. 우선 대부분 비상용발전기는 디젤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매연이나 소음 등의 문제가 있어 평상시에는 운전하기가 어렵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비상용발전기는 정전이 일어난 후에야 기동하도록 돼 있어 전력난을 해소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루라도 빨리 ESS를 보급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서도 발견된다.
선투자로 일자리 창출 효과도
ESS는 성장의 기로에 선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ESS 시장규모는 지난해 약 11조원 정도였지만 2020년에는 47조원, 그리고 2030년에는 120조원 규모로 폭발적인 성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배터리기술과 전력변환기술·정보통신기술, 그리고 소프트웨어기술에서 세계 최고에 있는 우리나라는 ESS 시장에서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잠재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를 제때 활용하려면 우선 초기 시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선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때 마침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에서 최근 한국전력 주도로 500메가와트(㎿) 규모의 ESS 설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운용해 연간 3,000억원의 발전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ESS산업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본다. 시기를 놓치지 말고 투자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발전소를 짓지 않고도 전력 문제를 해결하고 먹거리와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창조경제의 모범 답안이 바로 ES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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