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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여진구, 김새론, 김유정... 모두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아역으로 등장해 인기를 끈 배우들이다. 시작은 아역이었지만, 최근엔 주요 작품 주연으로 자리를 꿰차며 '잘 큰 아이들'의 표본이 되고 있다. 반면 역사가 짧은 국내 뮤지컬계에선 그동안 대표 아역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2시간 넘게 라이브로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해야 하는 뮤지컬의 특성상 무대의 부담을 어린 나이의 배우들이 감당하기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뮤지컬 시장에 '아이들'이 주목받고 있다. '귀여운 녀석일세'하고 웃어넘기기에는 깊은 감정연기와 뛰어난 가무가 돋보이는, '아이돌' 못지 않은 끼로 무장한 '아이들'이 무대를 풍성하게 꾸미고 있는 것이다.
"단백질은 유기질의 결합 전기자극 반응하는 세포 (중략) 미세혈관 노폐물은 중화될 수 있다 뇌신경은 중추신경 손상위험 높아 부패가 된 시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충무아트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이 한창이다. 낭랑한 목소리로 어려운 과학용어를 읊어대는 무대의 주인공은 뮤지컬 아역 최민영(12)군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어린시절을 연기한 오군은 엄마의 죽음 앞에 오열하며 아버지를 비난하는 장면부터 "나 때문에 너도 저주에 걸릴거야"라고 고뇌하는 장면까지, 어려운 감정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최근 막을 내린 뮤지컬 서편제에서도 아역들의 열연이 주목받았다. 어린 송화 역을 맡은 윤시영(13)양은 아직 어리지만, 8살에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6년차 배우다. 오즈의 마법사로 데뷔한 뒤 10편 넘는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연기학원을 중심으로 연예인을 지망하는 어린이들이 많아진 게 뮤지컬 키즈의 증가 배경이다. 공연 업계 관계자는 "연기학원에서 연기는 기본이고 춤과 노래를 전문적으로 갈고 닦은 아역들이 많다"며 "뮤지컬 시장이 대중화되면서 뮤지컬 배우에 대한 어린이들, 엄밀히 말하면 부모들의 관심이 커졌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엔 무대에 나와 대사 몇 개 한 뒤 퇴장하는, 비중이 매우 낮은 배역들을 했다면 요즘 아역들은 노래와 춤, 연기는 물론이고 극의 감정을 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뮤지컬 아역들의 활약은 몇 년 전 한차례 크게 부각된 바 있다. 2006년 국내에서 초연한 '애니'는 뉴욕의 고아원에서 부모를 기다리는 애니와 악덕 고아원장, 애니를 입양하고 싶어하는 갑부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 뮤지컬로 다수의 아역들이 극을 이끌었다. 2010년 공연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천재성을 지닌 발레소년을 똑부러지게 연기한 정진호, 박준형이 뮤지컬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쉬운 점은 새로운 아역을 발굴하고 성장시키기에 이들이 설 무대와 배역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 아역 배우들의 역할은 여전히 주인공의 어린시절에 치우쳐 있어 다양한 활용에 제약이 있다. 뉴시스, 마틸다, 올리버 등 외국 유명 뮤지컬의 경우 아역들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장기공연에 성공하며 배우 발굴에 기여했다. 반면 한국은 뮤지컬 주 관람층이 20, 30대이다보니 어린이보다는 성인 스타배우가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외국은 가족 뮤지컬이 발달해서 아역 스타의 등장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가족뮤지컬이란 개념 자체가 어린이 뮤지컬로 잘못 전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족뮤지컬은 어른이 봐도 유치하지 않고 어린이가 봐도 어렵지 않아야 해 고가의 특수·시각 효과가 많이 들어간다"며 "외국은 1년 넘게 장기 공연을 해 제작비를 회수 하지만 한국은 해외 라이선스 작품을 2, 3개월 올린 뒤 내리기 때문에 가족뮤지컬이 발달하기엔 어려운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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