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항공사가 지난 1년간 스포츠 스폰서십에 들인 돈은 1억7,200만파운드(약 2,900억원)쯤 됩니다."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포뮬러원(F1) 스폰서십 조인식. 자사의 스포츠 마케팅 규모를 공개하는 셰이크 아메드 에미레이트항공 회장의 표정에는 깊이를 짐작하기도 힘든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이날 에미레이트항공은 F1 자동차경주대회 측과 5년간의 후원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 기간 F1에 에미레이트항공 로고를 노출하는 데 드는 돈은 1년에 최소 630만파운드(약 107억원). F1의 연간 TV 시청자 수는 6억명에 이른다.
아랍의 거대 자본이 전세계 스포츠를 주무르고 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F1 외에도 국제축구연맹(FIFA)∙세계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를 후원한다. 축구∙F1∙테니스 등 인기 스포츠들을 차례로 집어삼키고 있는 셈. 미국 덴버대를 나온 아메드 회장은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통치자의 삼촌이기도 하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지난해 11월에도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아스널과 1억5,000만파운드(약 2,550억원) 규모의 스폰서십 재계약을 발표했다.
유럽프로축구가 아랍 거부들의 주요 투자처라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로운 소식도 아니다. 아스널 지분의 29.63%를 보유한 공동 구단주는 이란 출신의 투자가 파라드 모시리이며 풀럼도 파리의 최고급 호텔 '리츠' 회장인 모하메드 알파예드(이집트) 소유다. 또 지난 시즌 EPL 우승팀인 맨체스터 시티는 잘 알려졌듯 UAE 아부다비의 '석유 재벌' 셰이크 만수르가 지난 2008년 9월 인수했다. 이달 1일 '축구 아이콘'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면서 주목 받은 프랑스 리그의 파리 생제르맹(PSG)도 카타르 왕족 나세르 알켈라이피가 구단주로 있다. 테니스 선수 출신인 알켈라이피 구단주는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영입에 1억유로(약 1,400억원)도 쓸 수 있다는 자세다. 리오넬 메시의 소속팀 바르셀로나도 다음 시즌부터 유니폼에 카타르항공 로고를 새긴다. 유럽 재정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스포츠 구단들에도 아랍 돈줄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BBC는 6일 "선수 임금과 구단 운영비가 날로 치솟으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구단들이 돈을 마련할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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