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펜 자이베르트 독일 총리실 대변인은 이날 “미국대사관의 베를린 역장(station chief)에게 독일을 떠나라고 했다”고 밝혔다. 추방 대상자의 이름, 직위, 소속 등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이른바 ‘역장’은 특정 국가에서 신분을 위장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CIA 비밀요원 가운데 최고 책임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이번 퇴거 요구가 연방검찰의 수사 결과 수개월 전 독일 내 미국 정보기관의 활동에 대한 의문에 따른 것”이라고 추방 이유를 설명하며 “정부는 이를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70년간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양국 사이에서 이번 추방령은 최고의 외교적 적대행위에 해당한다. 그는 다만 “독일은 서방 동반자 국가들, 특히 미국과 긴밀하고 신뢰성 있는 협력을 계속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이날 베를린을 방문한 유리 랸케 몰도바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충분한 사실적 근거를 확보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결정할 것”이라며 단호한 조치를 예고했다. 메르켈 총리는 동맹국을 상대로 한 스파이 행위는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라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에 중요한 일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시리아 사태와 테러대책 등을 우선해 다뤄야 하고 동맹국 간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직접적인 논평을 회피한 채 양국 간 정보공조는 불가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이틀린 헤이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정보기관 관련 사안에는 논평하지 않는다”며 “어쨌든 우리와 독일 간 안보와 정보 관계는 매우 중요한 일로 그것이 독일인과 미국인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협력이 계속되는 것이 중요하며 적절한 채널로 독일 정부와 계속 접촉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도 스파이 활동의 사실 확인 여부와 독일의 결정에 대해 정보 사안이라는 이유로 직접적인 언급을 삼간 채 “미국은 이번 일을 매우 엄중하게 여긴다”고만 답했다. 그는 미국과 독일의 정보 관계는 양국 안보에 아주 중요하며 외교, 정보, 법무 채널을 통해 독일과 접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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