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치러진 변호사단체 회장 선거에서 변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비(非) 서울대ㆍ비 판검사 출신이 처음으로 회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가운데 80~90%가 등록돼 서울지방변호사회 수장 자리에는 30대 후보가 처음으로 뽑혔다. 나승철(36ㆍ연수원 35기)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당선 직후 한 원로 변호사는 "언젠가는 젊은 층이 회장이 될 줄 알았지만 그것이 지금일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자타 모두 보수적이라 평가하는 변호사 사회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바깥에선 나 회장을 '변화', '열혈'같은 단어로 평가한다. 나 회장 스스로도 이를 잘 안다. 그런 나 회장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뜻밖이었다. 나 회장은 "변화는 당연한 것이지만 회원들을 모두 아우르는 '안정적인 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화의 상징인 후보가 당선 뒤에도 바꾸자고 달려들면 사람들이 피곤해하고 불안해 한다"며 "회장은 모두의 의견을 아울러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나 회장의 행보는 '돌직구'였다. 뜻이 맞는 변호사들과 세운 '청년변호사협회'에서 사법고시 존치 목소리를 높였다. 임신한 여성 변호사를 강제 휴직시킨 법무법인(로펌) 대표를 검찰에 고발했다. 강성 이미지는 선거에 걸림돌이 될 법 했다. 나 회장은 "선거 공약집에서 '청년'자를 모두 뺄 정도로 신경을 썼다"며 "청년 변호사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 변호사의 말도 경청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의도는 적중했다. 나 회장은 "선거운동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돌 때 30년 선배 변호사가 '승철이 왔느냐'며 매우 반갑게 끌어안았다"며 "지지 연령층이 넓어졌다는 사실을 확신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지지층 확대는 표로 입증됐다. 나 회장은 모든 투표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선거운동이 전략적이었냐"고 묻자 나 회장은 "전략적이었다기 보다는 진정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봐달라"고 답했다. 나 회장은 서울변회 회장 선거 재수 끝에 당선됐다. 직전 선거인 2011년 91대 서울변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26표 차이로 떨어졌다. 낙선의 실망이 컸지만 곧바로 마음을 추스르고 전부터 해 왔던 활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나 회장은 "처음에는 '나도 이런 일 그만두고 생업에나 열중할까'하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그런 마음을 딛고 꾸준히 목소리를 냈던 것이 변호사들한테 인정받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당선 전부터 계속 주장했던 것들을 선거 공약으로 삼았고 유권자는 이를 믿어줬다.
나 회장이 안정 이외에 또 하나 제시한 키워드는 '생존'이었다. 나 변호사는 "변호사수증가와 외국 로펌의 국내 진출 등으로 변호사 업계는 어느 때보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내몰려 있다"면서 "회장으로서 변호사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고민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가 내놓은 해답은 '시장 왜곡 개선'이다. 나 회장은 "현재 법조 브로커들이 변호사 업계를 좀먹고 있는데 일선 변호사들은 광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사건 수임 시장에 브로커가 끼어들어 수임료를 챙겨가고 돈 없고 빽 없는 변호사는 변호사 광고 규제에 막혀 의뢰인을 만날 길이 없다는 지적이다. 나 회장은 "변호사 시장 왜곡을 개선하면 변호사는 생존하고 국민은 질 높은 법률서비스를 보다 낮은 비용으로 받을 수 있다"며 "시장 왜곡 개선은 앞으로 집중할 부분 중 하나"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 회장이 방점을 찍는 또 하나의 것은 변호사 단체의 공익적 역할이다. 나 회장은 "서울변회는 쌍용자동차 사태 특별조사단을 꾸려 결과를 내놓는 등 그간 변호사 단체의 공익적 역할을 해왔다"면서도 "아직까지 충분한 공익 활동을 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변호사 단체로서 권력을 감시하고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앞장 서겠다"며 "회 차원에서 인권팀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안정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민감한 이슈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나 회장의 의지는 변함 없다. 나 회장은 "조만간 사시 존치 운동과 변호사 근로실태 평가 등 논쟁적인 사안에 뛰어들 것"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은 이미 다 세웠다. 실천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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