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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우리는 자연을 온전히 자연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의도했건 안 했건 간에 문명의 틀에 의해 풍경을 보고 있으며, 특히 골프장과 정원은 인간의 욕망을 '맞춤한 공간'으로 기이한 풍광을 연출하죠."
신작의 주제로 골프장이라는 의외의 공간을 선택한 작가 홍경택(46·사진)의 설명이다. 그의 개인전 '그린 그린 그래스( Green Green Grass)'가 서울 서초구 페리지갤러리에서 5일 개막했다. 익숙한 전시제목은 영국 가수의 노래 제목에서 따 온 것으로 "고향을 그리며 꿈에서 깨니 주변은 감옥의 회색벽이더라는 노랫말처럼 우리가 꿈꾸는 자연과 막상 체험하는 자연은 괴리가 있다"는 작가의 설명이 뒤따른다.
대중적인 그의 대표작은 지난해 5월 홍콩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억7,000만원에 거래되며 당시 홍콩에서 거래된 한국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운 '연필'을 비롯한 원색적인 그림이지만 최근의 화풍은 좀 더 차분한 색조로 정물을 넘어 풍경까지 아우른다. 이번에 선보인 신작 '서재-골프장'에 대해 작가는 "10년 전에 의뢰를 받아 골프장 그림을 그렸으나 완성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다시 도전한 것"이라며 "한국사회에서 골프는 '비싼 스포츠'이며 골프장은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공간인데 다수의 욕망이 하나로 수렴될 때는 큰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제목에서 '골프장' 앞에 붙은 '서재'에 대해서는 "인간이 벗어버리지 못하는 '문명의 틀' 혹은 '문명의 상징들'이고 요즘 자연은 드문드문 눈에 걸리는 인공조형물 때문에 자연 자체만을 볼 기회가 적다"고 일침을 놓았다. 나란히 걸린 '서재-에베레스트산'도 마찬가지다. "동양인은 산을 신성한 대상으로 보고 감히 오르고 정복할 생각을 안 했지만 서양인들에 의해 에베레스트 산은 정복당했죠. 이제 그 산은 모두가 오르려는 산, 그 제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려는 욕망을 조성하는 공간이 되어버렸죠."
홍경택의 작품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회화의 전성기를 이뤘던 17세기 플랑드르 회화처럼 기술적 완성도와 함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감춰진 이야기가 있어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골프장'에 등장하는 7마리 토끼는 인간의 인공교배로 만들어진 것들이라 하나도 같은 종이 없다. '…에베레스트산'의 꺼진 촛불과 은제 그릇 등은 사라지고 바래는 인생무상의 상징이며 올빼미는 죽음을 은유한다.
하나의 구심점에서 무수한 선들이 뻗어나는 구도를 갖는 작품 '반추'는 대표작 '연필' 대신 골프채로 이뤄져 있다. 골프채의 반짝이는 헤드에 작가의 얼굴이 비쳐진 일종의 자화상이기도 한데 이 작품을 두고 작가는 "골프채를 모아놓고 보니 꽃 같았고 코스모스처럼 보였고 코스모스의 다른 뜻인 '우주'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한 그림"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내년 1월31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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