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대의 경제성장과 지식의 확산 덕분에 마르크스적인 종말은 피해갈 수 있었지만, 자본의 불평등의 심층적인 구조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자본의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설 때 자본주의는 자의적이고 견딜 수 없는 불평등을 자동적으로 양산하게 된다. 이러한 불평등은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능력주의의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침식한다."
토마 피케티의 연구는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이같은 인식에서 시작됐다. 그 첫 결과물은 22세 때 부의 재분배에 관한 박사논문으로 선보였고, 꼭 20년 후인 2013년 선보인 '21세기 자본'은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줬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가 이 책을 '향후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저서'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국민소득에서 최상위 소득의 비중이 장기간 변화해온 양상이다. 3세기에 걸친 20개국 이상의 역사 속 비교자료를 무려 15년간 다른 경제학자들과 연구한 끝에 그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자본은 한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 즉 돈이 돈을 버는 것이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를 앞지른다는 것이고, 당연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평등은 심화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 부의 분배는 언제나 정치적 개입에 의해 가능했으며, 시장 자체는 양극화를 자연적으로 막지 못한다고 설파한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수학적 경제모형이 아니라 전세계 학자 30명의 공동연구에 바탕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 '세계 최상위 소득계층 데이터베이스(WTID)'다. 바로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 부와 소득의 상관관계를 증명해줄 역사적 기록들이다. 이를테면 소득세·상속세 신고자료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의 변화를, 토지·부동산·금융/산업자본을 아우르는 민간과 국가의 자산 추이를 통해 사회 전체적인 자본이 얼마나 축적되고 국민소득에서 얼마나 이익을 내왔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일반 독자들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 3개의 공식으로 자본주의 궤적을 설명한다. 요컨데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자본수익률·r)이 언제나 경제성장률(g)보다 높다(r>g)는 것을 역사적 자료에서 도출해낸다. 국민소득에서 자본 소득이 차지하는 자본소득분배율은 자본수익률에 자본/소득 비율(β)을 곱한 것과 같다는 자본주의 제1 기본법칙(α=r×β), 자본/소득 비율은 장기적으로 저축률을 경제성장률로 나눈 값과 같다는 자본주의 제2 기본법칙이 나머지 둘이다.
그가 내놓는 해법은 누진적인 자본세다. 정부가 나서 가진 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고, 세계 각국이 연대해 부의 해외도피를 막는 '과세네트워크'를 형성하자는 게 골자다.
피케티는 이 책의 목적이 그저 "과거로부터 미래를 여는 몇 가지 그리 대단치 않은 열쇠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겸손해 한다. 충분히 추가적인 논의의 여지가 많은 주장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답적 경제이론 모델에 갇혀 기존 주류 경제학계가 현실의 자본주의를 외면해 왔는지 반성해 볼 수 있는 여지를 피케티는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기존 경제학은 '과학'의 허울을 쓰고 자기 만족에 빠지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피케티가 '완전히 이해하는 것처럼 굴지 않으려' 애썼듯이. 3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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