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이 다채롭고 참신하기로는 한국만한 곳이 없다. 미국만 해도 실상은 몇 가지 욕설을 조합·응용하는 정도에 그치고 이웃 나라 일본은 '바보'나 '똥' 정도가 최고의 욕설이란다. 하지만 우리는 고전적인 욕설만 뒤져봐도 지역과 성별, 나이에 따라 실로 다양하며, 기발한 신종 욕도 상시 창조되곤 한다.
영화 '헬머니'는 이런 대한민국이라면 '욕의 고수'를 가리는 욕 배틀 오디션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욕의 고수를 찾겠다며 전국을 떠돌던 '욕의 맛' 제작진에게 한줄기 섬광처럼 다가온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이정순 할머니(김수미). 쉴새 없이 쏟아지는 할머니의 구성진 욕은 상대의 폐부를 찔러 꼼짝 못 하게 할 뿐 아니라 옆에서 듣는 사람의 답답함도 싹 씻어준다. 닉네임 '헬머니'로 배틀에 참가한 할머니는 금세 강력한 우승 후보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처럼 욕을 퍼부어대는 것만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본질은 가족 이야기에 가깝다. 과거 생이별을 해야 했던 할머니와 아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의 드라마가 맛깔나는 욕 배틀 사이사이로 펼쳐진다.
가진 것 하나 없고 전과마저 있는 할머니가 한복의 장인, 장관, 방송국 사장마저 우러러보는 어르신이라는 설정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 전복(顚覆)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무엇보다 빛나는 것은 이 과장된 설정 속에서도 메시지를 전달해 내는 배우 김수미의 열연. 주성치나 성룡처럼 김수미 역시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특히 '돈도, 빽도 없이 입밖에 없는 사람들이 왜 욕 한마디도 못하고 입을 다물고만 있느냐'는 일성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금을 울린다.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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