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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엄마 델마가 주방일을 보며 수다를 늘어놓는다. 중년의 딸 제씨는 필요한 물건을 찾아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고, 두 사람은 이따금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평범한 모녀의, 평범한 대화가 오가는, 평범한 주말 오후는 제씨가 무심히 내뱉은 한마디에 얼어붙는다. "엄마, 나 오늘 죽으려고."
연극 '잘 자요, 엄마'는 '딸의 자살을 앞둔 모녀의 마지막 밤'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제씨의 자살 예고로 시작된 이야기는 90분간 델마·제씨 역의 두 배우가 펼치는 선 굵은 감정 연기로 관객의 애간장마저 태운다.
관객마저 심연으로 이끄는 배우의 연기엔 그 어떤 극적 요소도 없다. 억지로 누군가의 슬픔을 강요하지 않은 채 두 모녀는 솔직한 대화를 이어간다. 제씨의 아버지부터 그녀의 간질과 이혼, 집 나간 문제아 아들까지. 진솔한, 제대로 된 대화가 전개되면서 두 사람의 감정도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평소 같았다면 제씨가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줬어야 할 시간. 달래기도 해보고, 호통도 쳐보지만, 타들어 가는 델마의 속과 흐르는 시간 말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밤의 끝을 잡고 싶은' 노모(老母)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벽에 걸린 시계는 예정된 결말을 향해 야속한 뜀박질을 계속한다.
"오늘 밤은 엄마랑 나, 둘 만의 것이야." 늘 함께여서 느끼지 못했던,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가능했던 두 여자의 소중한 시간. 솔직한 속마음이 오고 간 뒤 제씨는 애원하는 델마를 거실에 남겨둔 채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얼마나 딸의 아픔을 알고 있었을까. 딸은 엄마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객석의 나는 어떠한가. 무대 위 조명이 꺼진 뒤에도 한참 동안 가슴 한 칸이 아린 이유는 충격의 총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델마 역은 나문희·김용림, 제씨 역은 이지하·염혜란이 맡았다. 8월 1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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