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한겨울에 한라산에 갔다가 길을 잃어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백록담 부근에서 느닷없는 폭설로 길이 순식간에 사라진 상태에서 완전히 고립됐다. 고산(高山) 등반은 난생처음이었던 필자는 오도 가도 못한 채 주저앉아 있다가 한참 뒤에야 나타난 등산객들을 따라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하산해서 만난 일행은 길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다니지 않고 제자리에서 기다린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 위로해줬지만 그때의 부끄러움은 내내 가시지 않았다. 하기는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건장한 남자보다 어린아이들의 생존율이 더 높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독일 경제학자 홀름 프리베의 책에 소개된 내용이다. 건장한 남자는 길을 잃었을 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창피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분주하게 움직이다 구조되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구조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기다림이 미덕일 수 있을까. 베트남전쟁 때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미군 장교 제임스 본드 스톡데일은 기다림의 역설적인 힘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지난 1965년부터 8년간 수용소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가운데 암담한 현실을 직시해 대비한 끝에 자신은 살아나올 수 있었던 반면 곧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낙관주의자들은 거듭되는 상실감을 못 이겨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 출소 뒤 그가 밝힌 생존 비결이었다. 미국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그의 말에 착안해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용어를 만들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회사들에는 역시 기다림의 미학이 있었다고 역설했다. 2009년 삼성전자가 '아이폰 쇼크'에도 의연히 일어나 '갤럭시 신화'를 일궈낼 수 있었던 것 또한 위기의식이 뒷받침된 강한 생존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무기력이다. 영원한 자동차산업의 왕자일 것만 같던 미국의 제너럴모터스나 세계 최강 휴대폰 업체였던 핀란드의 노키아나 현실에 안주하다 허망하게 몰락을 자초했다. 요즘 우리 경제에도 무기력증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 기업혁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인수합병(M&A)이 다음·카카오 외에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한 달에 두 건 이상의 빅딜을 통해 새로운 성장을 모색하고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은 고사하고 중국 레노버와 텐센트까지 글로벌 M&A 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오르는 마당에 현금성 자산도 넉넉한 대기업들이 무사안일에 빠져 있다. 국가 경제의 무기력도 심각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 경제가 세계 1위 경제강국인 미국을 어느 정도 추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경제추격지수'는 2013년 기준 100점 만점에 26점으로 23위에 그쳤다. 싱가포르(4위)와 일본(5위)·중국(6위)·홍콩(9위)에 크게 뒤진 것은 경제규모(세계 15위)에 비해 소득수준(24위) 상승이 더디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가계소득을 높여 경기회복의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최경환노믹스'의 방향은 옳다. 위기 극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삼성의 '마하경영' 또한 합당하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지금은 거대 기업을 일거에 무너뜨릴 빅뱅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비즈니스 환경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말했듯이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할 때"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과거 반도체 강국의 씨앗을 뿌린 삼성 이병철, 자동차·조선 신화를 일궈낸 현대 정주영, 대한민국의 전자산업을 개척한 LG 구인회 등의 '성공 DNA'를 되살려내야 한다. "기업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유능한 경영진의 결정이 동시에 그 기업의 선도적 위치를 잃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한 미국 경영학자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성공의 길에 왕도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불굴의 투지와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있다면 속도와 창조만이 아니라 기다림과 파괴까지도 우리에게는 혁신일 수 있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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