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시간)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통화정책회의에서 재정위기국의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전면적 통화거래(OMT)'를 통한 3년 만기 이하 국채의 무제한 매입에 나서겠다고 밝힌 게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ECB의 정책이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하는데다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총선 결과 등 단기불안 요소도 널려 있어 살얼음판 위의 일시적 안정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0일 하루 동안 유럽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80억유로로 올 들어 최대치를 기록했다. 유로존 재정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금리도 크게 떨어졌다. 바클레이스가 집계하는 유로존 기업들의 회사채 평균 금리는 6월 말 2.8%에서 현재 2.4% 수준까지 떨어졌으며 JP모건이 집계하는 고수익 회사채(비우량기업) 발행금리도 6월 말 6.4%에서 현재 5.6%로 크게 하락했다.
특히 재정위기의 뇌관인 스페인과 이탈리아 기업들의 자금조달시장이 이달 들어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9월 들어 두 나라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70억유로 이상으로 2월 이후 가장 많은 규모로 집계됐다.
이탈리아 인프라건설 업체 스남의 경우 10일 만기가 5년6개월과 10년인 회사채 25억유로어치를 각각 285베이시스포인트(1bp=0.01%)와 350bp에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2009년 이후 재정위기국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규모 중 최대다.
이 같은 유로존 금융시장 안정은 ECB의 통화정책회의 전후로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 최대 통신업체 텔레포니카는 5일 ECB 통화정책회의를 하루 앞두고 2월 이후 처음으로 5년 만기 회사채 7억5,000만유로어치를 발행했다. 발행금리도 485bp로 시장 예상치인 510bp보다 낮았다.
또 4일에는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유니크레디트가 3년 만기 회사채 10억유로를 390bp에 발행했으며 재정위기에서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최대 전력회사 ESB도 이날 5년 만기 회사채 6억유로를 590bp에 발행했다.
FT는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재정위기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2009년 이후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국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규모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바클레이스의 조너선 브라운 유럽 채권 담당자는 "재정위기국 회사채 발행시장에 오랜만에 최고의 환경이 조성돼 있다"면서 "지난주 ECB의 결정으로 펀드매니저들이 대규모 손실에 대한 불안감 없이 자신 있게 투자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드라기 효과'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JP모건자산운용의 닉 가트사이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금까지의 추이를 볼 때 유럽의 정책결정은 출발시점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이번주로 예정된 독일 헌법재판소의 유로안정화기구(ESM) 및 신재정협약 위헌 여부 판결과 네덜란드 총선 등이 금융시장의 단기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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