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소방관은 요즘도 과거의 충격적인 사고 장면을 잊지 못한다. 지난 2004년 경기 용인 수지구에서 열흘 사이에 세 명의 투신자살 사고를 처리한 뒤부터다. 당시 소방관 생활 9년째였던 그는 자살 충동을 가끔 느끼고 비슷한 유형의 사고 얘기만 들으면 아직도 두렵고 떨리며 악몽도 자주 꾼다고 말했다. 소방대원은 직업 특성상 끔찍한 사고 현장을 자주 접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3년간 참혹한 현장을 경험한 소방공무원은 전체 인원 중 15%나 됐다. 이들을 상담한 결과 자살 시도, 신경성 수면장애, 공황장애, 우울증, 불면증 등 여러 증상으로 나타났다. 동국대 안연순 교수팀이 한국형 직무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반 국민이 직무와 관련해서 받는 스트레스는 평균 48.4%다. 반면 소방공무원의 직무 스트레스는 평균 50.3%로 높게 나타났다. 소방관의 정신건강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한계로 체계적인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 관리가 어려운 점을 감안, 오는 2012년부터 매년 3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해 외상 후 스트레스(PTSD) 고위험군 대상자에 대한 특별검사와 치료비 일부를 정부에서 분담할 계획이다. 동료가 사망한 현장 또는 다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현장을 목격한 소방공무원에 대해서는 3일 이내에 전문가 상담 의무화 등 정서와 심리적 안정을 위한 심층 검사를 지원할 예정이다. 아울러 소방관을 자체 심리상담사로 양성해 충격적인 사고현장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자에 대해 초기에 외상 후 스트레스를 상담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ㆍ운영해서 관리할 방침이다. 특히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 문제는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고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특성이 있어 지자체에서 체계적으로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소방공무원에 대한 체계적인 정신건강 관리에 관심을 갖고 예산을 지원함으로써 소방공무원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재난업무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방관이 건강할 때 국민에게 양질의 높은 119 서비스가 제공됨은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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