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역을 맡든 그럴 듯 해 보이는 배우가 있고 어떤 배역을 맡든 자연스러운 배우가 있다. 배우 송강호는 후자 쪽이다. 그는 어떤 배역이든 자연스럽게 송강호라는 그릇에 담아 둥근 그릇의 송강호라면 둥글게, 각진 송강호 그릇이라면 각지게, 그러나 송강호라는 그릇임은 분명한 그런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관상’에서는 계유정난의 한복판에 던져진 천재 관상가 김내경으로 변신한 그를 3일 종로 코리아나 호텔에서 만났다.
송강호는 내경이 자연인 송강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고 내경에 대해 설명했다.“파란만장하고 희로애락을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표현하는 중심인물이에요. 천진난만함부터 진지한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안타까움에 대한 철저함 이런 것들이 자연인 송강호와 많이 닮아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감정들을 다 끄집어 냈어요. 설국열차의 남궁민수는 모호하고 신비로운 지점에 있는 캐릭터라면 김내경은 가장 인간적이고 ‘송강호스러운’ 인물이어서 감정이 가장 많이 나온 것 같아요.”그의 말대로 내경은 자연인 송강호와 가장 닮아있을 것 같다. 대중은 송강호를 생각하면 웃음과 동시에 진정성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계유정난이 배경인 이 영화는 정치와 권력 그리고 이에 순응하는 처세술 등 진지함을 담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극 초반 송강호와 조정석의 코믹 콤비는 송강호의 특기인 빵 터지는 웃음을 제대로 터트려 애초에 없었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드라마가 강해서 시나리오 자체는 굉장히 무거웠어요. 그래서 경쾌한 스타트를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작업을 했어요. 원래 코미디 구조였다면 저와 조정석씨의 코미디가 튀지 않았겠지만 경쾌한 사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사극이 처음인 그에게 사극 대사가 어렵지는 않았냐고 묻자 “사극이 영어도 아니고 불란서어도 아니고 말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어요”라고 답해 기자들에게 웃음을 줬다. 그는 이어“새벽 3시 영하 17도였던 날 용인에서 한복만 입고 야외 촬영을 했는데 약간 어지러웠어요. 찾아보니 뇌졸중 초기 증세랑 비슷해서 이러다가 이 나이에 (뇌졸중으로)이렇게 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어요”라며 사극 촬영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송강호가 생각하는 역사의 운명은 이런 것이었다. “운명을 바꿀 수 없다기보다는 역사는 우리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라는 역설 같은 것이 아닐까요. 계유정난이 실제 사건이지만 좌절감이나 패배감을 안겨준다기보다는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죠. 그런 지점에서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 같아요.”
좀더 개인적인 운명에 대해 물었다. “배우란 직업에는 특수성이 있다. 경험과 역경을 거친 다음에 연륜이 생기고 또 그 결과가 다른데 이것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직업이 배우인 것 같아요. 스포츠로 이야기하면 운동경기는 끝이 나면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은 한 번의 작품으로 승부가 결정되지 않는다. 지금 성공을 하든 패배를 하든 내 인생에서 하나의 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 점들이 연결돼 선이 되고 후에 또 내 연기에 연륜이 돼서 반영이 되고 그렇다.”자연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그의 연기에서 누구의 연기를 참고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다고 느껴졌던 것은 이런 그의 삶에 대한 태도가 만들어 준 것일지도 모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