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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서부터 손자까지 변하지 않았던 군용 보급품 '의류대(衣類袋)'가 신형으로 바뀐다. 의류대란 한마디로 커다란 가방. 훈련소를 떠나는 육해공군, 해병대의 이등병들이 보급받은 군복과 속옷·양말·군화·세면도구를 몽땅 한곳에 쓸어담는 대형 가방을 뜻한다.
보통은 '더블백' 또는 '따블백'이라 불리지만 우리나라에 이 용어를 전해준 미군에서의 명칭은 '더플백(duffle bag)'. 벨기에 앤트워프 부근 더플 지역에서 지난 16세기 초부터 생산한 두꺼운 천으로 만든 대형 의류 가방을 뜻하던 더플백은 1차 세계대전 때 미군 의무대에서 사용하기 시작해 2차 대전을 통해 미군 전체에 퍼졌다. 미국의 전시대여법에 의해 원조 물자를 받은 나라들도 더플백을 대량으로 받았다.
해방 직후 미국의 원조로 창설된 국군도 마찬가지. 세월이 흐르며 재질이 두터운 면직물에서 나일론으로 바뀌었을 뿐 모양과 용적은 70년째 그대로다.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3~4대가 같은 모양을 사용해온 더플백이 70년 만에 신형으로 바뀌는 것이다. 국방부는 손잡이와 바퀴가 달린 신형 의류대 보급 예산을 내년 예산요구액에 반영시켰다.
새로 배치되는 공군 신병들에게 우선 지급될 신형 의류대는 외관이 구형과 전혀 다르다. 단가 역시 36.7% 비싸졌지만 장병들이 원하는 군수품을 지급한다는 취지로 시범 보급을 앞두고 있다. 신형은 용적도 60ℓ로 구형(55ℓ)보다 커졌다. 외부 수납 주머니가 달리고 색상 역시 검정으로 변경돼 보다 세련된 느낌을 주며 해외 파병군에게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군으로 확대될지에는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의류대는 실제 상황 발생시 급하게 피복류를 쓸어담는 용도로는 물론 한계 상황에는 진지 구축용 모래 흙 포대로 활용될 뿐 아니라 유골 수습용으로까지 쓰임새가 다양해 현재의 단순함을 유지하자는 견해도 적지 않다.
신형 의류대가 확산될 수 있을지 여부는 돈에 달렸다. 예산요구액이 실제 예산안에 반영된다면 대한민국 수립 이래 대를 이어 사용해온 '군대 더블백(의류대)'의 존재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더블백'이라는 용어도 '더플 캐리어' 또는 '의류 캐리어'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공유한 '더블백'의 추억이 과거 완료형으로의 시제 변환을 앞두고 있다. @sed.co.k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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