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도 겁을 먹고 있지만 교사도 무서워합니다. 아이의 미래가 달린 문제 아닙니까."
한 교사가 학교 생활기록부에 폭력을 휘두른 사실을 기재하도록 한 정부 대책에 대해 보인 반응이다. 또 다른 교사는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잘못한 걸 알면서도 그걸 시인하는 순간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사과와 반성은커녕 살벌한 분위기만 학교에 감돈다"고 한숨지었다.
얼마 전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교사들의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여기서도 교사들은 '가해 사실의 생활기록부 기재'에 대해 하나같이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학교폭력 대책 중 가장 실망스러운 대책"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19일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설문조사는 그동안 들은 얘기와 너무 달라 눈을 비비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 추진 점검을 위한 설문'에서 가해 사실의 생활기록부 기재를 포함한 '피해 학생 조치 및 지원 개선' 대책이 효과적이라고 답한 교사가 74.2%(중복응답)에 달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고등학교 생활지도부장과 통화하고 나서야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해당 교사에 따르면 설문 항목은 '피해 학생 조치 및 지원 개선(가해 사실 생활기록부 기재, 피해 학생 선치료)'으로 돼 있었다.
이 교사는 "각각의 설문 항목을 하나로 합쳐놓으니 그중 피해 학생 우선 치료를 보고 '효과적'이라고 답했을 것"이라며 "가해 사실의 생활기록부 기재는 대부분의 교사가 반대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에 항목 분류를 이같이 한 이유를 물었더니 "교육과학기술부의 대책 항목 분류가 원래 그렇게 돼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장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만든 항목인지 교과부에 제출할 실적 거리를 만들기 위한 것인지 묻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시교육청은 "학생 생활지도의 표준을 만들어나가겠다"는 포부까지 보도자료 말미에 밝히고 있다. 현실과 괴리된 조사를 토대로 만들어질 시교육청의 학생 생활지도 정책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