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는 지난 4ㆍ11 총선 때도 복지 공약에 소요되는 예산을 추계해 공개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자 아예 법을 바꿔서 선관위가 복지 공약에 소요되는 예산을 직접 발표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발표 주체만 선관위일 뿐 실제 공약 검증의 키는 재정부가 쥐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재정부가 정치권 최대 이벤트인 대선을 앞두고 복지 포퓰리즘 경계에 나서는 것은 분명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올해 무상보육 사태에서도 보았듯 복지 포퓰리즘은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을 불러온다.
최근 대선 주자들이 꺼내 드는 복지 공약도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가장 유력한 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고교 무상교육 공약까지 들고 나왔다. 소요 예산이 2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복지 정책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박 장관의 아이디어에는 다소 무리수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 재정부가 아무리 '독야청청(獨也靑靑)'의 심정으로 여야의 복지 공약을 싸잡아 검증한다 해도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은 차가울 수 있다. 친인척, 고위 공무원을 막론하고 연이어 터지는 부패 스캔들에 현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박 장관이 모범 사례로 제시한 뉴질랜드 정부의 정치권 공약 검증도 우리 현실과는 너무나 다르다. 뉴질랜드는 정부가 여당의 공약에 대해서만 검증할 수 있다. 우리처럼 집권 여당과 한배를 탄 정부가 야당의 공약까지 검증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뉴질랜드는 의원내각제로 대통령제 선거와는 체계 자체가 다르다.
정치권 복지 공약 검증이 백번 필요하다 해도 그 역할은 유권자 단체, 언론 등에 맡기는 것이 옳다. 선거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은 복지 포퓰리즘 만큼이나 위험한 발상이다.
가뜩이나 지금의 재정부 장관은 대통령의 최측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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