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중견기업 대표단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더라도 기존에 받았던 세제ㆍ연구개발(R&D) 지원을 그대로 유지시켜 ‘피터팬 증후군’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고 했다. 중소ㆍ중견기업이 안주하지 않고 성장 사다리를 통해 중견ㆍ대기업으로 커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는 것이 1단계라면 2단계로 우리나라 수출의 10.9%, 고용의 5.7%를 담당하고 있는 중견기업을 육성시켜 경제활성화 달성을 위한 또 하나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피터팬 신드롬 대신 ‘여의봉 신드롬’ 만들 것=박 대통령은 중소ㆍ중견기업이 현실에 안주하면서 성장을 멈춰버리는 피터팬 증후군을 과감하게 혁파하는 대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고 중견기업이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여의봉 신드롬’을 만들겠다는 점을 역설했다. 손오공이 어려운 적(敵)과 상대할 때에는 여의봉을 늘려 대결하고 결국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순간 77개에 달하는 정부 지원이 없어지거나 줄어들고 20개의 새로운 규제가 적용된다”면서 “그래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보다는 중소기업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증후군까지 나타나고 있는데 새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ㆍ중견기업이 스스로 성장판을 닫아버리는 잘못된 규정을 수정ㆍ보완해 기업을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세제ㆍ금융지원을 늘리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는 박 대통령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및 베트남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다음달 중순쯤 중견기업 지원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발전법 등 수많은 법률에서 기업 범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분화돼 중견기업이 사실상 대기업과 같이 분류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지난 2011년 3월 산업발전법에 중견기업 정의를 끼워 넣어 중견기업 지원에 나서고는 있지만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차제에 아예 별도의 중견기업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중견기업 육성방안으로 가업승계 상속공제 대상을 현행 매출 2,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늘리고 공제한도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을 졸업하더라도 고용 등 일정 수준의 조건을 유지하면 3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추가로 5년간 기존 혜택을 지속시켜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견기업 고용유지를 위해 스톡옵션제, 근로자 퇴직공제, 재형저축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중견기업이 튼튼해야 나라경제도 튼튼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중견기업들이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도록 별도의 지원체계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여의봉 신드롬’ 생태계를 조성하고 중소ㆍ중견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은 대기업을 통한 고용창출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을 통해 핵심 국정과제인 고용률 70%를 구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중소ㆍ중견기업 육성을 통해 고용률 70%를 달성하게 되면 중산층 70% 구현은 자동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신념이 배어 있다.
박 대통령은 “중견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유연한 조직과 개방적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고 벤처기업에 비해서는 R&D나 네트워크 등에서 우수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서 “중견기업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면 창조경제와 경제활성화에도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고용을 확대하는 중견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계속 가업을 이어가면서 고용을 확대해나간다는 점에 우리가 평가기준을 둬야 되지 않을까”라며 “중견기업일 경우 얼마만큼 고용창출 능력이 있고 고용창출에 얼마만큼 기여를 하느냐 등을 평가기준으로 삼아 인센티브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 관련 회의가 있을 때에는 빨간색 옷을 입는데 이날 간담회에서도 빨간색 재킷에 갈색 바지를 입고 중견기업 대표들을 만났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현오석 부총리가 둥글게 모여 있는 중견기업인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인사를 건넸다. 다소 긴장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인지 사회를 맡은 조원동 수석이 짧은 유머를 던졌다. 조 수석은 “오늘은 청와대 본관에서 제일 크기가 큰 방에서 회의가 열린다. 어제 열렸던 대기업 회의보다 규모가 조금 더 크다”면서 “이는 우리 경제계의 큰 사다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신발 속 돌멩이’를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손톱 밑 가시를 중견기업에서는 신발 속 돌멩이라고 하는데 사실 신발 속 돌멩이하고 손톱 밑 가시하고 어떤 것이 더 괴로울까요”라며 “혹시 이상한 돌멩이가 있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데 힘든 게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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