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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프론티어] 50년 넘게 왕성한 활동 배우 이순재

대발이 아버지로… 야동 순재로… 노년의 로맨티스트로…<br>"날 필요로 하는 작품마다 최선 다하죠"



'대발이 아버지'에서 '야동 순재'까지. 배우 이순재(76ㆍ사진)에게 붙은 별칭들은 그가 지난 수십년간 해온 왕성한 활동을 충분히 뒷받침해준다. 근엄한 왕(드라마 '이산')이나 인자한 대통령(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으로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이끌다가도 야한 동영상을 좋아하는 할아버지로 변신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친근하게 다가섰으며(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 일흔이 넘은 나이에 사랑에 빠지는 로맨티스트(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로 분해 관객들을 뭉클하게 했다.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순재 씨는 반듯한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최근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와 '욕망의 불꽃' 촬영이 한창인 데다 그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개봉으로 홍보 일정까지 겹쳐 젊은이라도 피곤하다는 말을 할 법한 스케줄이었지만 그는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농담까지 곁들이는 여유를 보이며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왕성하게 활동하는 비결로 그는"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몸을 아끼지 않고 뛰었다"는 한 마디로 정답을 말했다."나이가 더 먹고 기억력이 없어지면 못하게 되니 체력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까지 최선을 다해 쓰러지더라도 현장에서 쓰러질 것"는 그의 의지가 진심으로 와 닿았다. 그는 1956년 서울대 연극회 활동을 시작으로 올해로 56년째 연기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처음 연기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지금 같은 '직업'으로서 또는 '돈벌이'로서의 연기가 아닌 '예술'로서의 연기를 생각했다. "우리 때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가치관을 외국 작품을 통해 발견했어요. 예를 들면 내가 가장 존경하는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을 보고 '이건 행술행위다'라고 생각한 거지. 로렌스 올리비에는 영국에서 'sir(남작)' 작위를 받은 사람이라고. 그 나라가 인정하는 당당한 예술가지요. " 연기를 예술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연기자가 '딴따라'라고 무시받던 시절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연기자로 살아올 수 있었다. 그가 주연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지난 17일 개봉해 23일 현재 25만명을 돌파했다.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주연 배우 이순재의 관록에 힘입어 상영관 수 대비 선전하고 있다. 주름지고 검버섯이 난 얼굴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노년에 만난 사랑에 수줍게 "사랑합니다"를 고백하는 그의 연기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 덕분이다. 그는 "노년의 로맨스도 젊은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며 "이 영화가 성공해 노역이 나오는 영화의 저변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희망과 달리 현재의 드라마나 영화 제작 환경은 노년의 배우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젊은 시절엔 왕성하게 활동하다가도 노년이 돼 생활고로 마감하는 배우들이 허다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간을 주면 충분히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대선배들 중에 경제적 빈곤으로 어렵게 생활을 마친 분들이 정말 많아. 정말 훌륭하신 분들인데. 말년에 나이 먹고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생활고로 많이들 고생하셨지" 훌륭한 예술가들이 경제적 고통으로 생을 마감하는 문제는 최근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죽음으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92년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내가 국회의원 할 때 문광부 예산이 정부 예산의 1%도 안됐어. 문광부에 문화, 예술만 있는 게 아니라 종교, 체육, 관광, 청소년 등 아이템이 한 두가지가 아니잖아. 그런데 1% 정도의 예산을 받으니 문화ㆍ예술에 얼마나 투입이 됐겠냐 이거야. 이건 정부나 국가의 인식의 문제인 거지. " 그는 문화예술을 국가적으로 밀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예술이라는 게 경우에 따라 당대의 평가를 받지 못하고 돈을 못벌 수도 있지만 문화 산업이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크게 일조하는 만큼 정부에서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모두 각자 만드는 거지만 저변에서 밀어주는 정책은 필요하지. 이게 정치적ㆍ 문화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니깐 말이지. 예를 들어 TV 드라마의 당일치기 제작이 문제라면 정부기관에서 신인 작가 현상 모집을 해서 좋은 작품과 작가를 많이 발굴해 두면 이런 일이 조금씩 해결될 거 아니겠어요? 억대 현상금을 걸면 수백편의 작품이 몰려들지 않겠냐고. 그렇게 지망생들을 키우면 자연스럽게 저변을 확대할 수 있지. 또 지금처럼 방송사 각자 상을 주는 게 아니라 에미상 같은 시스템 만들면 얼마나 좋겠냐고. 제대로 된 상을 만들면 제대로 된 가치관을 확보할 수 있는 거니깐. 정부는 이렇게 붐을 조성해주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돼요" 요즘 배우들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하자 그는 요즘 배우들이 제대로 훈련을 하지 않는다며 개탄을 쏟아냈다. "한국 배우라면 우리나라 말을 제대로 구사해야지. 젊은 친구들이 재능은 뛰어나도 대사를 시키면 지적(知的) 표현이 안되더라고. 언어 훈련이 안돼서 그런 거지. 영어는 열심히 연습하면서 한국말은 왜 제대로 하지 않느냐고. 왕을 하는데 깡패 용어를 써서 되겠어요? 말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은 언어 훈련을 하고 연습을 탄탄히 해서 나와야 돼요. 어떤 일이건 최고를 유지하려면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듯 배우 역시 마찬가지지." 이처럼 배우들이 훈련을 하지 않는 데는 열악한 제작 상황도 한몫 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쪽대본'으로 겨우 겨우 제작하는 드라마 제작 현장이나 제대로 된 재훈련 시스템이 없는 환경이 전체 배우의 질을 떨어뜨리고 노년 배우들의 설 자리까지 없애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최근 세계 영화계의 흐름에도 관심이 깊었다.그는 영화 '드림걸스'의 비욘세를 예로 들며 "비욘세는 세계적인 가수인데도 그 영화에 출연하려고 훈련을 6개월 했다더라"며 "우리 배우들도 이처럼 끊임없이 리트레이닝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TVㆍ영화ㆍ연극 등에서 종횡무진 활동해온 그가 아직도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장르가 남아 있을까. 그는"미스터리를 한 편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심리적으로 추리해나가는 미스터리물의 노형사를 하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목소리는 걸걸한데 예리한 그런 역할. 괜찮지 않을까요?"차기작을 기대하며 눈을 반짝이는 그의 모습에 76이라는 나이는 무의미했다.
그의 연기 인생은…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시작
영화·드라마 통해 국민배우 떠올라
1956년 서울대 연극회 활동의 일환으로 유진 오닐의 희곡 '지평선 너머'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56년 '나도 인간이 되련다'로 TV에 데뷔한 후 1964년 동양방송(TBC)의 전속 탤런트가 된다. 1971년에는 연기자 협회를 결성해 초대와 2대 회장을 역임하고 16년이 지난 1988년에 연기자 협회 12대 회장을 재역임했다. 그가 출연한 수십편의 드라마 중에서 1991년부터 92년까지 이어진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보수적인 가족과 개방적인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려낸 작품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 그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표본인 '대발이 아버지'로 열연해 국민 배우로 등극하게 된다. 2007년에 방영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겉으로는 근엄하지만 야한 동영상을 좋아하는 노년의 한의사를 연기해 '야동 순재'라는 별명을 얻으며 젊은 세대에까지 인기 있는 배우로 입지를 넓힌다. 한편 TV 탤런트가 된 이후에도 그는 연극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나가 1971년에는 '시라노 드 베르주락'의 '시라노' 역 등을 맡았고 지난해에는 연극 '돈키호테'의 주역을 맡아 무대에서 열정을 과시했다. 영화는 1966년 '오늘은 왕'에 출연한 이래로 지난 17일 개봉한 만화가 강풀 원작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까지 20여 편에 출연했다. 그는 노년의 로맨스를 그려낸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순애보를 마다하지 않는 70대 노인'김만석'역을 맡아 웃음과 눈물을 이끌어내며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노년 멜로 배우'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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