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문제로 한일 양국 간에는 자칫 적대관계로 급변할 듯 싸늘한 말이 오간다. 싸울 전(戰=單,戈)이란 한자의 의미처럼 말(口)로 합의(單)에 이르지 못하면 창(戈ㆍ군사력)으로 싸우게 된다. 이쯤해서 한걸음씩 물러서 왜 이런 충돌이 발생이 발생했는지 생각해보고 결자해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본 정부는 참 염치가 없다. 독도를 비롯한 북방영토,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가 일본군국주의 침략전쟁의 부산물인데도 일본은 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미국 6·25 때 한국 섬들 일본령화 고려
독도 문제를 풀 블랙박스는 태평양전쟁의 종전처리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미국이 가지고 있다. 미국은 내심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전략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첫째, 태평양전쟁을 법리적으로 종결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준비하면서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1~5차 초안(1947~1949년 작성)에는 독도가 한국 땅으로 명기돼 있지만 그 후 나온 6ㆍ8ㆍ9ㆍ14차 초안에는 일본 땅으로 바뀐다. 1951년 9월 체결한 최종 문서에는 독도가 아예 빠져버린다. 그렇게 된 내막은 미국이 잘 알고 있다. 당시 공산권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을 활용하려는 미국의 관대함과 일본의 집요한 로비가 작용한 것이다. 일본을 활용하는 미국의 전략은 한국전쟁 기간 연합군이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며 부산이 위태롭게 되자 제주도를 일본에 넘기자는 의견이 대두된 것과 유사하다. 적이 한국을 장악할 경우 도서 지역은 일단 일본에 남겨뒀다가 장차 작전을 위해 사용하려는 군사전략적 판단이 우선인 셈이다.
둘째, 미국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공군작전을 위해 독도를 포함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유엔군과 미 태평양공군사령관이 설정했다. 한국 영역을 방어하기 위해 미군이 직접 그은 작전 지역 범위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기준으로 1952년 1월18일 '이승만 평화라인'을 설정했다. 대일강화조약 발효(1952년 4월)로 일본이 독립하기 전에 해양주권을 선언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미군사령관이 구획한 한미연합작전계획 5027의 작전범위도 독도를 포함하고 있다.
중ㆍ고대사 사료를 접어두고 태평양전쟁 이후의 사실만으로도 독도는 한국 영토임이 분명하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상 일본이 한국보다 중요할 수 있겠지만 동맹국으로서의 미국의 도리는 진실을 밝혀주는 것이다.
중일 간에 분쟁이 야기되는 센카쿠에 대해 미국은 미일안보조약 제5조의 적용대상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일 간에 분쟁이 벌어지면 미일이 공동 대처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데 독도는 한일관계를 우려하면서 중립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 한미 이간질해 자기 뜻 관철 시도
최근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미 태평양군사령부는 지난 9일 한일관계가 좋지 않으면 중국의 위협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국방정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했지만 한국이 응할 리 없다. 일본은 한미 양국의 틈새를 벌리는 이간책으로 동맹을 형해화(形骸化)하고 미일동맹을 강화해 미국의 힘을 이용하는 카드를 쓸 수 있다. 최근 호주와의 접근도 이를 시사한다. 일본은 한미일 공조가 어렵다고 판단, 미국ㆍ호주와 3국 해양세력의 안보협력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6월에는 제주 남방에서 한미일 3국 해군이 함께 훈련했지만 순식간에 공조의 틀이 흔들리고 있다. 한미-미일 동맹의 중심인 미국이 나서 3국 공조 강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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