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조용히 경제구조 개혁에 전념하던 남유럽이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각국의 국채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에서는 힘을 합쳐 위기를 타개해야 할 연립정부가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스는 그동안 이행한 구조조정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집행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우선 가장 크게 흔들리는 곳은 포르투갈이다. 2일(현지시간) 연정을 구성하는 대중당의 파울루 포르타스 당수는 긴축정책에 반대한다며 외무장관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포르투갈 긴축정책 설계자'로 불리던 비토르 가스파르 전 재무장관이 사임한 지 하루 만이다.
문제는 포르타스 당수의 사임이 연정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포르투갈 의회 전체 의석(230석) 중 파소스 코엘류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은 108석을 차지하고 있고 대중당은 24석을 점해 포르타스 당수가 연정탈퇴까지 선언할 경우 연정이 무너질 수 있다. 코엘류 총리는 아직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으며 포르타스 당수도 연정탈퇴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리스본대 정치학 교수인 안토니오 소스타 핀토는 "대중당이 계속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며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은 조기총선"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 안 그래도 비틀대는 포르투갈의 경제상황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 포르투갈의 경제성장률은 구제금융을 받았던 지난 2011년 -4.8%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2.3%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1ㆍ4분기 실업률도 17.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내년 6월에 구제금융을 졸업하겠다던 포르투갈의 목표도 불투명해졌다고 밝혔다.
이런 우려로 포르투갈의 10년물 국채금리는 3일 장중 한때 7.4%를 돌파하며 하루 만에 0.8%포인트나 뛰었다. 포르투갈 국채금리가 7%를 넘은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7개월여 만이다.
이탈리아 연정도 흔들리고 있다. 마리오 몬티 전 총리는 1일 "엔리코 레타 총리가 자유국민당(PDL)과의 불협화음을 끊지 않고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 경우 연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레타 총리는 4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몬티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연합의 연정 내 지분이 작아 당장 연정붕괴로 이어지지는 않겠으나 그가 가진 국내외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이탈리아 정치 및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레타 총리는 몬티 전 총리 시절에 도입하기로 한 부동산세 철회를 놓고 PDL과 갈등만 빚을 뿐 이렇다 할 개혁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한 PDL 당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역시 최근 미성년자 성매수와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7년형과 공직진출 금지 명령을 받고 항소를 준비하는 등 국내 정치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리스의 경우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지원금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3일 로이터가 복수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한 데 따르면 현재 국제채권단은 그리스에 주기로 한 81억유로를 집행하는 데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동안의 구조개혁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다음달 22억유로 규모의 채권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이달 안에 지원금을 수령해야 한다. 하지만 유로존 고위관계자는 "국제채권단이 그리스 구제금융 실사를 이달 안에 완료하는 것이 쉽지 않아 오는 9월까지 미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향후 그리스는 채권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등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로이터는 "그리스와 포르투갈ㆍ이탈리아에서 긴장이 고조될 경우 지난 9개월간 유로존 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기울여온 각국 정치인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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